《짓고 부수고 다시 짓고 다시 부수고….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념비적여행’전은 파괴와 건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아시아의 현실을 예술가와 함께 바라보는 여정이다. 독립 큐레이터 조선령 씨가 기획한 전시에선 한국 인도 대만 방글라데시 중국 등 아시아 작가 12명이 국가와 지역이 벌여놓은 개발의 이면에서 버려진, 더는 쓸모없어진 공간을 탐색한다. 전시의 실마리는 미국의 대지미술가 로버트 스미드슨의 ‘파사익 기념물 여행’(1967년)에서 따왔다. 산업화의 황폐한 흔적이 남은 고향마을(뉴저지의 파사익)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록한 글과 사진 작업이다.》
마을에 흩어진 공사장을 ‘역전된 폐허’라고 명명한 스미드슨은 긴 세월의 흐름이 쌓여 만든 낭만적 잔해와 달리, 애당초 파괴를 예정한 역설적 풍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처럼 ‘폐허로서 건설 중인’ 풍경에 주목한 ‘기념비적 여행’전은 개발 이데올로기가 양산해낸 망가진 장소를 드러내며 예술과 공간, 예술과 환경의 관계를 사유하게 이끈다. 전시는 8월 21일까지. 02-547-9177
서울 종로구 관훈동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에서 8월 8일까지 열리는 ‘짓다’전은 시공간의 사적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거친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지하실에서 젊은 작가 백우진 이혜인 씨는 각기 나무 구조물을 만들어 집에 얽힌 독백을 들려준다. 큐레이터 이관훈 씨는 “각자 겪어온 삶의 언저리에서 미술과 환경을 어떠한 기호와 이미지로 맥락화할 것인가에 의미를 둔 전시”라고 말했다. 02-733-0440
○ 쓸모를 위해 버려진 공간
“나는 미래가 비(非)역사적인 과거의 쓰레기 더미 속 어딘가에서 상실되었음을 확인한다.” 스미드슨의 말처럼 ‘기념비적 여행’전에 등장하는 공간에는 현재와 과거, 미래가 불연속적으로 뒤섞이며 다층적 시공간을 드러낸다. 영상 속에서 공사를 위해 철거되는 도시 풍경이 SF 애니메이션처럼 기괴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든 젠첸류 씨, 재개발을 앞두고 텅 빈 동네를 한가롭게 다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담아낸 홍현숙 씨, 도시 풍경에 지하 벙커를 합성한 사진을 내놓은 조민호 씨의 작업은 익숙한 듯 낯설다.
계단을 따라 전시된 인도 작가 아툴 발라 씨의 작업도 인상적이다. 1주일간 야무나 지역을 걸으며 만난 풍경과 사람을 사진과 텍스트로 기록한 작품은 작가의 여정에 동참하는 느낌을 준다. ‘리슨투더시티’팀의 경우 서울의 랜드마크를 ‘허구의 기념비’라고 주장하며 실제로 일반이 참여하는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폐허 같은 공간을 탐색하는 이 전시는 아시아가 맞닥뜨린 현실을 보여준다. 발전과 개발의 이름 아래 밀어닥친 폭풍은 한국이든 방글라데시든 어디서도 예외가 없음을.
○ 쓸모없음을 위해 지은 공간
짓고 부수기를 무수하게 반복하는 세상. 그 속에서 나만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과 환경이 온전히 남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짓다’전에서 이혜인 씨는 나무 구조물 안에 자신이 거쳐온 공간에 대한 기억을 은유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이들이 놓일 장소는 전시장이 아닌, ‘그림 속처럼-지금은 비닐하우스들이 늘어선-빈 들판이나 기찻길 옆, 혹은 동네 골목 어귀의 전봇대 앞이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백우진 씨의 설치와 드로잉은 후미진 곳에 자리해 개인적 공간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버려진 것들로 자기만의 집과 우주를 짓듯 공간을 만든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짓는다. 지구라는 별에, 우주라는 공간에 오늘도 짓고 내일도 짓는다. 어제도 지었다. 우주 짓기를 수없이 반복 반복 반복하다가는 해 아래 새것이, 원형의 것이 정녕 없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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