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작가가 살아온 세상은 “무엇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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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6일 03시 00분


■ 박완서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돌아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노(老)작가가 보기에 세상은 과연 그러하다. 소설가 박완서 씨(사진)의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에는 그 이해 못할 세상에 대한 날선 비난이 서려 있다.

2008년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짧은 산문 모음 ‘세 가지 소원’과 동화집 ‘나 어릴 적에’를 내는 등 활발한 글쓰기를 계속해 온 그다. 올해 팔순을 맞은 박 씨는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어서 행복하다”면서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고 털어놓는다.

6·25전쟁 60주년에 이르도록 그해의 나이인 스무 살에 영혼의 성장이 멈췄다고 말하는 작가는 산문집에서 1·4후퇴 당시의 추위를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군부대의 오발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오빠를 손수레에 싣고 가느라 고생하던 차에, 수레바퀴가 빠져버려서 인근의 빈집에 숨은 채 혹독한 추위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박 씨는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며 이념 충돌이 낳은 비극의 무자비함을 성토한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에서도 작가는 전쟁의 비극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 사건에 낀 우리의 입장, 주변국과 강대국의 태도, 북에 대한 의구심과 적개심, 그 정당한 분노조차 자제해야 할 것 같은 그래도 전쟁만은 피해야지 하는 마지막 평화주의.” 작가는 그 평화주의가 “진상(眞相)까지도 피해가고 싶을 만큼 비겁한 것”이라고 덧붙임으로써 전쟁의 공포를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6·25때 겪은 전쟁의 공포 ‘천안함’에서 다시 떠올라
황금만능주의 길들여진 우리의 얼굴에 소름끼쳐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을 대하는 심경도 참담하다. “집을 철거당하고 그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낮아서 분풀이로 불을 질렀다고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뻔뻔스러움에는 소름이 끼쳤다. 결국은 돈이었다.”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금전만능주의를, 자신의 일까지 돌이켜 반성하면서, 작가는 맹렬하게 비판한다. “책임져야 할 고위층이 다같이 형식적인 사죄 끝에 입에 올린 약속도 돈,… 돈자루를 틀어쥔 이들의 또 하나의 파렴치,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팔아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그게 한 번도 불로소득이란 생각을 안 해본 나의 뻔뻔함. 그러고 더 많이 벌어 흥청망청 쓰는 사람만 보면 이놈의 세상을 송두리째 깽판 치고 싶다는 열화 같은 정의감의 그 못 말리는 뻔뻔스러움.” 작가는 “내가 소름끼쳤던 것은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받들어온 경제 제일주의가 길들인 너와 나의 얼굴, 그 황폐한 인간성에 대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문집에는 그간 읽은 책에 대한 생각과 함께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박경리 선생 등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글도 묶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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