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된 돌을 잇지 않고 흑 ○로 나간 것은 극약 처방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수읽기를 해보면 흑 ○가 정상 처방임을 알 수 있다.
흑 ○ 대신 참고도처럼 흑 1로 잇는다고 해보자. 이때 백 2, 4로 젖혀 잇는 것이 기분 좋은 선수. 우하 백귀가 모두 집으로 변한다. 흑 7의 후퇴가 불가피한데 백 8로 나가면 상변도 견제할 수 있다. 결국 서로 기세 대결을 펼쳐 흑 55까지 바꿔치기가 일어났다. 흑은 실리를, 백은 두터움과 선수를 얻었다. 두 기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아 한 번 겨룰 때마다 퍼런 불꽃이 인다. 그러나 한창 싸우다가도 절묘한 타협으로 마무리된다.
흑 57도 타이밍 좋은 응수타진. 만약 백이 59의 자리로 뚫으면 흑 넉 점을 내주고 우하를 차지할 심산이다. 여기서도 흑백이 타협해 백 60, 흑 61로 서로의 돌을 보강했다. 흑 63으로는 상변을 좁게 지킬 수도 있었다. 상변은 흑의 옥토인 만큼 확실하게 단속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단순히 지키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흑 63으로 폭을 넓혀 큰 모양을 만들고 싶다.
김지석 7단 역시 고분고분 집을 만들어줄 생각은 없다. 백 64로 깊숙이 침투한다. 이렇게 직선적으로 두는 게 김 7단의 기풍. 수읽기에 자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흑 65, 67로 백의 탈출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김 7단이 봐둔 탈출로는 어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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