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설득의 대가들이 상대방을 순식간에 굴복시키는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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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31일 03시 00분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케빈 더튼 지음·최정숙 옮김/376쪽·1만5000원/미래의창

설득할 것인가, 설득당할 것인가.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에서 저자는 단순성 의외성 자신감 등의 전략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무력화하는 설득법 ‘초(超)설득’을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설득할 것인가, 설득당할 것인가.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에서 저자는 단순성 의외성 자신감 등의 전략으로 상대를 순식간에 무력화하는 설득법 ‘초(超)설득’을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저녁 모임에서 7·28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해 누가 언급했다. 세상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늘 있게 마련이지만 다들 별 말이 없었다. 답답하고 일방적이라고 느끼는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듯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상투적인 ‘소통’의 부재라는 단어만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분명 상황을 극적으로 뒤집을 말을 찾는 것 같았지만 모두의 마음을 공감시킬 촌철살인의 한마디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 의사소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어떻게, 어떤 표현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변화시킬 수 있을까? 심리학자는 저녁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집에 돌아와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상황을 반전시키고,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어떤 비법을 알려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양한 심리학 연구 결과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의 해결책이 대부분 일반적인 지식이나 사례에서 나오기보다는 예외처럼 보이는 특이한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체 보안시스템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설득의 비법, 상황을 일거에 바꾸어 버리는 반전의 대화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상황을 반전하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비법, 특별한 종류의 설득기술 즉, 설득의 반전기술에 대한 것이다.

이 특별한 비결 덕분에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고객을 만들기도 하며, 무장 강도를 말로만 제압하기도 한다. 케빈 더튼이 말한 이 비결, SPICE는 단순성(simplicity),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생각(perceived self-interest), 의외성(incongruity), 자신감(confidence), 공감(empathy)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 요소가 발휘하는 힘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한데, 그에 대한 설명을 다양한 일화를 덧붙여 제공한다.

이 ‘찰나의 설득’이 일어나는 순간에 대한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훈장을 받을 정도로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한 공군이 그를 치하하는 자리에서 너무 긴장해 있자, 혹시 자신 앞이라 초라하게 여겨지는 것이냐고 처칠이 물었다. 공군은 “네, 총리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처칠은 “그러면 내가 귀관 앞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쉽게 알겠네요”라고 말해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킨다.

설득의 대가에는 거물 정치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적 재능만큼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재능도 남다른 유명 밴드 오아시스 역시 가끔 설득에 재능을 보이는 모양이다. 한 콘서트장에서 음향장비 문제로 공연을 계속할 수 없게 된 갤러거 형제는 “이 공연은 무료다. 환불받고 싶은 사람은 요청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환불 요청자에게 오아시스가 이용하는 특별한 은행에서 발행한 오아시스 형제의 사인이 들어간 수표를 지급했다. 대부분의 팬은 이 특별한 수표를 현금화하지 않았고, 당연히 수표 자체에 희소성이 더해져 가치는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결국 오아시스는 거의 경제적 손실을 입지 않았고, 팬들도 행복해했다.

이렇게 양쪽이 모두 행복해지는 예가 있는가 하면 한쪽이 완승하게 되는 예도 있다.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피곤하니 일찍 자라고 설득하는 엄마를 아이는 “엄마, 그럼 내가 아침 7시부터 뛰어다니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단번에 제압해 버린다. 이처럼 설득의 대가는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윈스턴 처칠이나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 같은 거물 정치인부터 법조인, 사기꾼, 테드 번디 같은 잔혹한 연쇄살인범, 그리고 사이코패스까지 설득의 ‘반전기술’을 알고 있는 사회 각계각층의 ‘설득 대가’들의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설득 노하우를 전달한다. 거기에 더해 간단한 심리 실험 사례를 열거해 객관성을 더함과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설득당할 수 있는지,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것 같은 우리의 뇌가 얼마나 쉽게 교란당하는지, 그 결과로 우리가 어떻게 속게 되는지를 알려준다. 신생아와 사이코패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도 마음 자체와 마찬가지로 진했을까? 설득 도사와 무술 도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두뇌에는 ‘설득경로’라는 것이 있을까? 이 책은 이런 다양한 질문에 저자 나름의 흥미로운 대답을 제시한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영향력으로, 어떤 언어나 의식적 사고가 섞여 들어가지 않은 채로, 마치 총알처럼 우리의 마음을 곧장 뚫고 들어가게 하는 방법, 그것이 바로 내가 그날 저녁 자리에서 간절히 찾았던 것이었다. 소통의 부재를 느끼면서 답답하게 생각하는 국민의 마음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한마디의 표현, 그것을 찾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단숨에 살펴보게 된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그 표현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은 일반적인 이야기에서 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내가 이 책의 내용을 다 숙지하고 그것을 나의 문제에 적용, 응용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 같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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