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에 사는 주부 김승옥 씨(42)는 한 달 전 안양 시내 대동문고에 책을 주문했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직원들을 정리했는지 사장 아들이 직접 배달을 왔기 때문이다. 대동문고의 부도 소식을 재작년 처음 접했을 때 눈물까지 흘렸다는 김 씨는 “정들었던 이웃이 쫓기듯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속상하다”고 말했다. 대동문고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은 김 씨 같은 안양시민만이 아니다. 전국 중소 서점의 잇따른 폐업을 우려하는 서점계와 출판계 사람들에게 2008년 11월 부도 이후 힘겹게 버텨온 대동문고의 미래는 큰 관심사다. 대형 체인 서점에 밀리고, 할인 공세를 펼치는 온라인 서점에 고객을 빼앗기는 중소 지역 서점의 현실을 대동문고가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매장을 바라보고 있는 전영선 대동문고 대표. 그는 대동문고가 위기를 맞은 데 대해 “책이 스승이고 서점이
생명이라는 생각으로 한평생 살아왔는데…”라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안양=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고 한때 전국 10위권 규모를 자랑했던 대동문고가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2005년 길 건너에 교보문고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창업주인 전영선 대표(70)는 맞대응 차원에서 자금을 빌려 더 넓은 건물로 매장을 옮겼지만 경쟁에서 밀려 자금 압박이 심해졌다.
사업을 함께하는 아들 전창민 이사(40)는 “‘너희가 시대적 흐름을 못 읽은 것 아니냐’라고 꾸짖는다면 할 말 없지만 안양의 문화 사랑방이었던 대동문고가 없어지면 많은 사람의 소중한 추억이 없어지는 만큼 어떻게든 명맥이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대동문고에선 작가 초청 행사, 전시회, 학생 견학 행사 등이 숱하게 열려 시민들에게 책의 자양분과 추억을 함께 심어주었다. 교도소 교화사업, 길거리 문화제 등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작은 서점은 줄어들고 대형 서점은 점점 늘어
대동문고에 얽힌 추억을 잊지 못하는 시민들은 올 초 대동문고 살리기 서명운동을 벌였다. 대동문고 측은 고객 서명과 지역사회 공헌 자료 등을 첨부해 4월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이제는 독자회생밖에 길이 없는데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책 대금이 밀리면서 등을 돌리는 출판사가 생겼다. 신간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매장의 서가에도 듬성듬성 빈 곳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나마 대동문고 측이 위안으로 삼는 것은 고객들의 응원이다. 40년째 단골인 백만호 씨(55)는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 대동문고에서 책을 산다. 그는 “초등학생 때 돈이 없어 서점에 서서 책을 읽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정년퇴직한 교장 12명은 2명씩 조를 이뤄 서점에서 무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동네 서점이 활성화돼야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책을 사보게 된다. 모세혈관과 같은 중소서점의 몰락은 출판 생태계를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2010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전국의 서점수는 2003년 3589곳에서 2009년 2846곳으로 줄었다. 반면 평균 전용면적은 109.1m²(33.0평)에서 181.5m²(54.9평)로 늘었다. 작은 서점의 비중이 줄고 대형서점의 비중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도서정가제’ 정착시켜 동네서점 활성화해야
백 연구원은 서점을 상업적 공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화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책적 지원이 어렵다면 중소서점에 안전망이 되는 도서정가제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