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맛 다르게 느끼듯 시간의 흐름도 마찬가지…하나의 환상인 거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5일 03시 00분


■ 호주 시드니대 시간연구소장 휴 프라이스 석좌교수

김재명 기자
김재명 기자
“과거는 고정불변이고 미래는 유동적이라는 생각도 주관적인 인식일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열려있죠”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그것이 ‘흐른다’는 것이다. 또 과거는 고정돼 있으며 미래는 열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철학적 관점에서 시간을 연구해 온 석학에게 ‘시간’은 이 같은 모습과 달랐다. 경희글로벌연구네트워크팀(대표 최성호 교수)과 한국분석철학회(회장 손병홍 한림대 교수)가 공동 개최한 ‘과학의 형이상학’ 국제학술회의(8월 3∼5일)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방한한 휴 프라이스 호주 시드니대 챌리스석좌교수(사진)를 2일 서울 중구 을지로4가 국도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이 대학의 시간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상대성이론을 일반인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듯이, 일상의 체험과 꼭 일치하지 않는 철학자의 시간 이야기는 알 듯 말 듯하지만 새로운 관점을 던진다.

―왜 시간에 주목하는가.

“사람은 시간 안에 사는 존재다. 그 속에서 미래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며 반면 과거는 결정돼 있고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물리법칙 속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른 두 관점이 충돌해 여러 가지 철학적인 질문을 생성한다.”

―어떤 질문들인가.

“시간이 우리의 인식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인식에 의존해 존재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어떤 것이 우리의 인식에 독립적으로 실재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철학의 존재 이유라 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예컨대 17세기 이전 색깔이 객관적인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이라고 믿었던 것과도 유사하다.”

―시간은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 아닌가.

“시간 자체는 인간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과거나 미래와 달리 현재가 아주 특별하다며 현재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존재하는 것들이 시간 속에서 과거로 사라져가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시간 속에서 새롭게 생성된다는 인식, 또 과거는 고정불변인 반면에 미래는 열려 있고 유동적이라는 생각 등은 우리 안에서 비롯된 주관적인 인식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느끼는 변화들은 무엇인가.

“소년과 성인 때의 자기 사진은 모습이 다르다. 이것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년 시절의 내가 사라지고 성인인 내가 새롭게 생성된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소년인 나나 성인인 나는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4차원의 큰 덩어리 안에 ‘동일한 수준’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강의 상류와 하류 지점은 폭이 다른 것처럼 다른 시점에서 내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직관적인 인식과는 차이가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색깔이나 맛처럼 시간의 흐름도 하나의 환상(illusion)이다. 미래라고 해서 덜 결정돼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라고 해서 더 결정돼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미래도 어느 정도 결정돼 있다는 숙명론처럼 들리는데….

“숙명론이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병에 걸렸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니 약을 먹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관점이라면 내 견해를 숙명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나의 견해를 통해 미래에 닥쳐올 일들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한다.”

―시간 여행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우선 미래로 가는 건 물론 가능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미래로 가니까(웃음). 그런데 과거로 여행이 가능하냐의 문제는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최근 물리학에서도 ‘가능성이 있다’는 쪽의 견해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면 특히 양자역학에서 중요한 수수께끼들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다른 소수의 철학자, 물리학자들과 이런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프라이스 교수는 철학자로서 1989년 세계적인 과학전문 주간지 ‘네이처’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 있던 오류를 지적한 논문을 게재해 주목받기도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나윤석 인턴기자 서강대 국문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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