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꺼질듯 꺼지지 않는 촛불, 구원의 불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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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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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메카로 가는 길
대본 ★★★★ 무대 ★★★★ 연기 ★★★☆ 연출 ★★★☆

연극 ‘메카로 가는 길’에서 여주인공 헬렌(오른쪽)이 자신의 내면을 밝혀준 촛불 이야기를 꺼낼 때 무대 전체에선 ‘촛불잔치’가 펼쳐진다. 사진 제공 플래너코리아
연극 ‘메카로 가는 길’에서 여주인공 헬렌(오른쪽)이 자신의 내면을 밝혀준 촛불 이야기를 꺼낼 때 무대 전체에선 ‘촛불잔치’가 펼쳐진다. 사진 제공 플래너코리아
《연극 ‘메카로 가는 길’(연출 송선호)은 촛불의 연극이다. 그 촛불은 어둠을 환히 밝히는 촛불이 아니다. 거의 다 타들어갔다고 생각한 순간 가물거리다 다시금 환한 불꽃을 피워내는 촛불이다. 암흑을 물리치기보다는 내면의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촛불이다.

연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란 낯선 공간, 그중에서도 가장 황량한 오지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한 노파의 집을 무대로 펼쳐진다. 15년 전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사는 헬렌(예수정)의 집으로 도시에 사는 여교사 엘사(원영애)가 방문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도회지 지식인답게 언행에 거침이 없는 엘사와, 평생 벽지에서 살아온 사람 특유의 조심성과 어눌함이 묻어나는 헬렌의 대화는 다소 지루하다. 마흔이 넘는 두 여인의 나이 차를 뒤집는 대화방식이 극적 긴장감을 불러와야 하는데 예수정 원영애 두 여배우의 나이 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무대가 팽팽한 긴장감을 되찾는 것은 헬렌과 동갑내기이자 20년 지기인 마리우스 목사(서인석)가 등장하면서다. 저녁 무렵 그의 등장을 통해 극의 갈등구조가 명확해진다.

헬렌은 현대판 마녀다. 그는 남편이 죽고 난 뒤 교회를 나가지 않기 시작했고, 이교도의 우상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조각상 만들기에 빠져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로 구성된 마을에서 그는 이제 이단적 존재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만 보던 마리우스는 헬렌이 큰 화재로 이어질 뻔한 사건을 실수로 저지르자 그를 설득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로 보내려 한다. 비록 선의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것은 헬렌에게 지난 15년간 이뤘던 자기만의 세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헬렌은 남편이 죽은 뒤 그 누군가를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내면의 등불’에 충실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를 실천해 왔다. 그것은 자신의 공간을 ‘메카’로 꾸미는 것이다.

여기서 메카는 이슬람의 성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헬렌에게 그것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동방박사의 고향이자 자기성찰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영혼의 안식처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리우스로 상징되는 제도종교의 밖에 존재한다. 신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내면의 구원을 믿는 이들에게 약속된 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헬렌은 목사인 마리우스에게 이를 토로할 수 없다. 엘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엘사와 마리우스의 논쟁은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돈다. 그 논쟁을 종식시키는 사람은 결국 어눌해보이던 헬렌이다.

그는 남편의 장례식이 있던 날 집에 홀로 남은 그를 위해 마리우스가 켜준 촛불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이 떠난 다음 난 그 촛불하고 같이 여기 앉아 있었어요. 서럽도록 작은 그 촛불…. 작은 눈물방울을 계속 흘리면서… 그 작은 촛불이 그날 밤 여기서 혼자 다 울어주었고, 그러느라고 몸이 녹아 아주 작아졌죠.…그런데 계속 타들어가면서도 없어지지 않고, 암흑이 파고드는 걸 허용하지 않으면서, 가물거리던 그 작은 불꽃이, 다시금 용기를 찾은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더니 점점 더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마리우스가 켜준 촛불이 헬렌을 그만의 메카로 안내한 것이다. 헬렌의 독백이 끝나자마자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무대 도처에 숨어있던 촛불이 동시에 빛을 발한다.

남아공 흑백차별이 가져온 사회모순을 천착해 온 극작가 아톨 푸가드가 1984년 발표한 이 작품은 헬렌 마틴스(1897∼1976)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극중 엘사의 말처럼 “자유가 말이 아니라 삶이 된” 헬렌에게 마리우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 촛불을 모두 밝혀놓은 것보다 당신이 훨씬 더 밝게 빛나고 있소.” 남아공 벽촌의 할머니는 그렇게 수많은 엘사의 영혼을 비추는 촛불이 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3만∼5만 원.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3272-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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