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5주년,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되짚어보는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과거에 솔직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책들이다.
일본 ‘슈칸분슌(週刊文春)’ ‘분게이슌주(文藝春秋)’ 편집장을 거친 한도 가즈토시 씨의 ‘쇼와사’는 부제가 ‘일본이 말하는 일본제국사’다. 쇼와(昭和)는 히로히토(裕仁) 일왕 시대인 1926∼1989년 사용된 연호. 이 시기를 저자는 다양한 사회상을 통해 비판적 시각으로 읽어낸다.
쇼와사에서 가장 극적인 하루는 1945년 8월 15일이다. 일왕은 이날 방송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항복 사실을 알렸다. 저자는 이날을 기점으로 일본이 온통 전쟁에 몰입하던 시기와, 전쟁의 후유증을 겪었던 시기로 쇼와사를 구분해 제국주의가 일본에 드리웠던 그늘을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한국을 강제병합한 일본은 다음 단계로 중국 땅에 손길을 뻗치며 제국주의의 야심을 확대해 나갔다. 이런 야심은 철도 폭파 자작극을 통해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구체화한다. 저자는 기나긴 전쟁의 시발점이 된 만주사변에 대해 “쇼와를 엉망으로 만든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일왕의 태도였다. 군부가 자신의 명령 없이 전쟁을 일으켰는데도 크게 탓하지 않았던 것이다. 군부는 더욱 기세등등해졌고 일본은 군부가 지배하는 국가가 되어갔다.
저자는 태평양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군국화 과정을 얘기하면서 당시 육군이 만든 팸플릿의 한 구절을 들어 그때의 분위기를 전한다. 팸플릿의 내용은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 문화의 어머니다’라는 것. 전쟁은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아버지이고 문화의 어머니이므로 전쟁에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어야만 하다는 이야기였다.
태평양전쟁을 벌인 직후 일본인들의 머릿속에는 ‘승리’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그러나 쇼와 20년인 1945년이 되자 일본은 이미 말세가 된 듯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어디를 보든 희망을 품을 만한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항상 굶주렸고 전쟁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났다.
패전 이후 180도 달라진 일본인들의 모습은 또 한 차례 저자를 놀라게 했다. “일왕의 무장해제 명령이 내려지자 군인들은 즉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말을 잘 들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연합군의 일본 진주를 맞아 내무성이 꺼내든 정책이었다. 연합군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안시설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내무성은 급히 특수위안시설협회를 만들어 위안부를 모집했고 각지의 경찰서장은 ‘국가를 위해 매춘을 알선해 달라’고 부탁하며 돌아다녔다.
이렇게 쉽게 모습을 바꾸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국가 발전에는 도움이 됐다. 최강의 군대 건설을 향해 있었던 모든 힘을 과학이나 문화, 산업의 향상에 집중하는 것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이런 와중에 발발한 한반도의 6·25전쟁은 일본으로선 경제부흥의 틀을 닦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종 44년의 비원’은 ‘무기력한 군주’로 각인된 고종의 참모습을 들여다보자는 논의에서 출발한 책. 역사학자인 저자는 “고종에 대한 상식적인 평가와 기억이 이 같은 수준인 것은 일제의 식민사학과 광복 후 이를 확대 재생산해 온 한국 사학계에서 연유한다”고 봤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고종은 재위 기간 내내 왕권 강화를 위해 애썼고 개화를 통한 국권 강화에 노력했던 인물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저자에 따르면 고종은 확고한 개국 방침을 갖고 있었다. 대원군이 섭정할 시기에는 지도력을 착실히 키워나갔다. 운요호사건을 계기로 서양문물의 우수성을 체험한 뒤에는 위정척사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개항을 추진했다. 동도서기(東道西器) 개혁정책을 모색한 것이다. 더 나아가 군 체계를 세웠고 신무기 개발과 강병책을 추구했다. 저자는 “서양의 입헌군주제만 수용하지 않았을 뿐 각종 사회경제적 제도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고종을 개혁군주로 자리매김하는 데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주변에 있었다. 저자가 보기에 대한제국 내부의 권력 쟁탈전과 친러, 친일 등 외세를 업은 계파 간의 대립과 갈등은 고종의 운신 폭을 좁게 만들었다. 황제보다 일제에 더 친밀감을 보인 관료군이 형성된 것은 고종의 비극을 넘어 대한제국의 비극이 됐다. 고종과 신하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가운데 적전(敵前)분열을 일으킨 것이 망국의 길을 걷게 된 요인 중 하나라고 저자는 봤다.
‘쇼와사’에 나타난 일본은 패망으로 한없는 나락에 빠지기도 했지만 곧바로 경제회복에 집중함으로써 이른 시기에 번영을 이뤄내는 저력을 보였다. 저자는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으로 책을 썼지만 행간에는 공통의 목표에 매진하는 국민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이 살짝살짝 자랑처럼 묻어난다. ‘고종 44년의 비원’에선 앞선 생각을 가진 지도자가 있더라도 지도층이 분열하면 결국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쇼와사’의 저자 한도 씨의 말처럼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역사는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역사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함께 읽어 볼 만한 책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는 책들은 그 시각과 방법론에서 다양한 특징을 나타낸다. ‘쇼와사’ ‘고종 44년의 비원’과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을 간추려봤다.
‘꼬레아 러시’(효형출판)는 대한제국 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의 행적을 추적한 책. 한국인의 편에서 일제에 맞선 언론인 매켄지, 차가운 시선으로 한국의 비극을 지켜본 프랑스 공사 프랑댕 등 다양한 면면이 등장한다. ‘1910년 오늘은’(서해문집)은 1910년 신문 기록을 통해 당시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대일본제국 붕괴’(바오)는 일본의 패망이 동아시아에 어떤 역사적 유산을 남겼는지 서술한 저작. ‘임페리얼 크루즈’(프리뷰)는 1905년 아시아에 온 미국 순방단의 행적을 통해 루스벨트가 추구한 아시아 정책의 실체를 파헤쳤다. 순방단은 ‘미국과 일본은 각각 필리핀, 대한제국 강점을 서로 묵인한다’는 밀약을 체결하는 비밀임무를 수행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