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必曰利章의 마지막이다. 魏(위)나라 제후 앵(앵)은 맹자를 大梁(대량)으로 초청하고는 맹자도 富國强兵策을 제안하리라 기대했지만 맹자의 대답은 달랐다. 왕은 하필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만 중시하여 利의 문제를 거론하십니까? 정치는 仁義를 정착하고 실현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맹자는 군주가 利만 앞세우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利를 취하려 하는 上下交征利(상하교정리)의 상황이 벌어지고, 그 상황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弑害(시해)하는 國危(국위)의 상태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그러고는 군주가 몸소 仁義를 행하면 아랫사람들이 교화되어 군주를 친애하고 받들 것이라며 처음 주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맹자가 군주에게 정치이념을 제시하고 군주를 설득하는 遊說(유세)의 방식은 매우 정교하다. 상대의 의표를 찔러 주장을 선명하게 제시한 후 주장을 부연하거나 비유를 들어 설명하거나 사례를 끌어와 입증하는 방식을 발화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했다. 그렇기에 程이(정이)는 맹자에게 英氣(영기)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조금이라도 영기가 있으면 圭角(규각)이 있게 되므로 영기는 일에 매우 해롭다”고 했다.
전국시대에는 여러 사상가가 爭鳴(쟁명)했다. 그들은 제후들의 면전에서 공개 토론을 통해 제후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言辯(언변)과 修辭(수사)가 필요했다. 맹자는 王道政治의 이념을 힘 있게 제시하고자 언변과 수사를 구사한 것이다.
仁義와 利에 대해 정이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라 해서 이롭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利만 추구한다면 해가 있게 되고, 또 仁義는 利를 추구하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주희는 이렇게 말했다. “天理를 따르면 利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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