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도전! 도쿄의 여섯 개 퍼즐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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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0일 03시 00분


내 안의 감성 찾아 日 심장 속으로

“도쿄(東京)는 퍼즐 같아요.”

마주 앉아 판 메밀을 함께 먹던 남자가 말했다.

“왜죠?” 나는 물었다.

“도쿄에 가는 이유가 제각각이잖아요. 누구는 먹으러, 누구는 옷을 사러, 누구는 야구를 보러….”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도쿄의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짜 맞춰 거대한 도쿄타워 모양의 퍼즐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는 대화를, 우리는 나눴다. 가까운 뉴욕 같다는 말도 나왔다.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나올 만큼 일본의 나라 살림이 각박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의 인기 있는 트렌드가 집결하는 그곳, 도쿄.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고는 다짐했다. 큰맘 먹고 장만한 렌즈교환식 디지털 카메라(하이브리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퍼즐을 맞춰 보리라. 여섯 개 ‘도쿄 감성’ 퍼즐을….

#퍼즐 1: 샤넬 레스토랑에서의 점심

엘리베이터의 동그란 버튼마다 샤넬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이 5년 전 도쿄 긴자(銀座) 지역만 콕 찍어 문을 연 레스토랑, ‘베이지 알랭 뒤카스 도쿄’다.

“정말요? 다른 나라엔 ‘샤넬 레스토랑’이 없단 말이죠?”

탐정 같은 눈초리로 묻자 지배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긴자의 샤넬 매장 옆쪽에 난 레스토랑 입구엔 프랑스의 유명 셰프인 알랭 뒤카스의 요리책과 샤넬 ‘넘버 5’ 향수가 진열돼 있었다. 예약을 확인하는 여직원은 샤넬 부티크의 점원들이 입는 블랙 앤드 화이트의 샤넬 옷을 입고 있었다.

“알랭 뒤카스 씨는 자주 오나요?”

“파리에 사는 그는 1년에 5번 정도 오십니다. 메뉴와 시설 등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애피타이저와 메인 요리, 디저트와 커피 등이 포함된 이 레스토랑의 점심 세트 메뉴는 5000엔(약 7만 원). 식전주로는 코코 샤넬 여사의 이름을 딴 ‘코코’ 칵테일을 골랐다. 차게 한 호박 수프,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새우 요리가 차례로 나왔다.

‘샤넬’이란 이름의 디저트는 금가루를 듬뿍 뿌린 네모난 초콜릿이었다. 커피와 함께 나온 또 다른 초콜릿들엔 샤넬의 시그너처 디자인인 동백꽃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었다.

모든 게 ‘샤넬 스타일’이었다. 미국 뉴욕의 유명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한 실내의 벽면엔 샤넬 쇼핑백을 들고 있는 서구 여성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기모노 차림에 진주 브로치를 한 중년 여성, 아이보리색 카디건과 얌전한 주름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 등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정적이고도 우아한 애티튜드!

오후 1시 반에 시작된 점심식사는 4시가 돼서야 끝났다. 간결하면서도 혁신적인 패션과 다이닝의 조화. 알랭 뒤카스가 이 레스토랑에 담고 싶은 ‘샤넬 정신’이란다.

글·사진 도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디자인=김원중 기자 paranwon@donga.com
▼불가리 커피… 400년 된 잡화점… 곳곳에 시공 뛰어넘은 名品의 혼▼

#퍼즐 2: 불가리 보석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다

긴자 샤넬 매장 대각선 맞은편엔 럭셔리 보석 브랜드인 ‘불가리’ 건물이 있다. 안구가 정화되는 보석 매장(1, 2층) 이외에도 레스토랑(8, 9층), 바(10층), 테라스(11층)에서 식도락을 누릴 수 있다.

10층 바에 들어서니 긴자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미쓰코시 백화점, 리코 카메라, 애플, 그리고 빨간색 도쿄타워…. 해질녘 도쿄타워 전망으로 자리를 잡으니 테이블 위엔 작은 선인장 화분이 있었다. 점심 파스타 세트는 3500엔, 모히토 칵테일은 2300엔, 그리고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에게 그나마 반가운 카푸치노 커피는 900엔(약 1만2600원).

바리스타가 흰색 거품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내온 커피를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 영화 ‘도쿄타워’에서 20대 남자 도오루는 불가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어울리는 40대 여자 시후미와 사랑에 빠져 말했었다. “시후미 상, 스무 살의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바 곳곳에 진열된 불가리 표 초콜릿 세트, 유리 장식장에서 위용을 뽐내는 보석 반지를 찬찬히 구경했다. 1950년대 신사가 메릴린 먼로의 금발을 좋아했다면, 2010년대 럭셔리 브랜드들은 초콜릿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긴자에 있는 일본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 매장도 갤러리, 레스토랑과 함께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니까. 럭셔리와 초콜릿. 달콤한 유혹이란 점에서 둘은 같은 유전자다.
①‘베이지 알랭 뒤카스 도쿄’의 ‘샤넬’이란 이름의 초콜릿 디저트. ②불가리 바에서 본 도쿄 시내 전경. ③아오야마 ‘콤 데 가르송’ 매장의 셔츠. ④긴자 애버크롬비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①‘베이지 알랭 뒤카스 도쿄’의 ‘샤넬’이란 이름의 초콜릿 디저트. ②불가리 바에서 본 도쿄 시내 전경. ③아오야마 ‘콤 데 가르송’ 매장의 셔츠. ④긴자 애버크롬비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쥘리에뜨 비노슈가 나왔던 프랑스 영화 ‘초콜릿’이 생각났다. 그녀가 만드는 초콜릿은 이상한 힘을 발휘해 마을 사람들을 사랑과 정열에 빠져들게 했다. 불가리 바에서 ‘봄날의 곰’ 같은 남편의 따뜻한 얼굴이 자꾸 그리워졌던 건 불가리 초콜릿의 마력 때문이었을까.

#퍼즐 3: 얄미운 ‘콤 데 가르송’ 재킷

이번에도 손에 넣은 것은 없지만 확실히 눈은 또 한 번 트였다. 도쿄 아오야마(靑山)에 있는 패션 브랜드 매장 ‘콤 데 가르송’에서다. 금색, 빨간색, 흰색, 검은색 등 서로 다른 단추를 한 줄로 달아 맨 푸른색 셔츠. ‘아, 동대문에서 예쁜 단추들을 사다가 싫증난 셔츠에 이렇게 바꿔 달면 되겠구나.’ 심 봉사의 개안(開眼)이 별건가.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아티스트로 통하는 일본의 여류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콤 데 가르송 브랜드를 이끌며 요상한 레이어드 룩과 그런지 룩(낡아서 해진 듯 표현한 패션)을 전개한다. 종종 대중을 당혹감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강력한 흡인력!

앞은 껑뚱 짧고 뒤는 꼬리처럼 길게 내뺀 재킷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이 입는 연미복의 품새였다. 5만5000엔(약 77만 원)의 가격표를 봤을 때 왜 하필 살림살이를 염려하는 주부의 본분이 퍼뜩 떠올랐을까. 국내 수입 판매가에 비하면 그래도 ‘착한 가격’이었던 것을.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 ‘연미복 재킷’과 나는 비운의 엇갈린 인연이더란 말인가.

#퍼즐 4: 웃통을 벗은 청년과 기념사진

도쿄에 간다고 하니 누군가 말했다.

“긴자에 지난해 말 새로 들어선 애버크롬비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러보세요.”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가 봤다.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내부. 놀이공원 유령의 집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빨간색 체크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직원이 달려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이댄다. “기념 촬영이에요. 치즈!”

어, 어. 그녀에게 떠밀려 혼미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 앳된 얼굴의 청년이 서 있다. 어머나, 망측하고도 반가워라. 웃통을 벗고 근육질 상체를 자랑하는 그와 얼떨결에 사진을 찍었다. 일종의 고객 서비스다. 매장 곳곳에선 직원들이 연방 흥겹게 춤을 췄다.

“늘 이렇게 춤을 추나요?” 나는 물었다.

“네. 우리의 콘셉트는 섹시한 파티거든요.” 예쁘장하게 생긴 여직원은 떠들썩한 음악 볼륨 소리 때문에 소리치듯 설명한 뒤 다시 춤을 추며 사라졌다. 둘러보니 매장 한쪽에선 남자 모델의 누드 화보집도 판매 중이다. 참, 애버크롬비가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 애버크롬비는 미국 캐주얼 의류 브랜드다.

#퍼즐 5: 도쿄돔에서 놀기

⑤도쿄돔 ‘아디다스’ 매장 앞. ⑥긴자 ‘이토야’에서 파는 여행자용 수첩.
⑤도쿄돔 ‘아디다스’ 매장 앞. ⑥긴자 ‘이토야’에서 파는 여행자용 수첩.
도쿄를 매우 자주 들락거렸지만 도쿄돔 방문은 처음이었다. 나만 그런 줄 알고 이 아까운 지면에 소개하는 걸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본인 아내를 둔, 게다가 스포츠 기자로도 일한 적이 있는 신문사의 같은 부서 후배가 “실은 저도 도쿄돔에 못 가봤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야구 마니아를 자처하는 나는 하네다(羽田) 공항에서 도쿄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로 진입한 뒤 곧장 지하철 스이도바시(水道橋) 역 부근에 있는 도쿄돔으로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드 케이스 트렁크를 끌고 있는, 영락없이 집 나온 행색이었지만 그래도 신났다. 도쿄돔 영어 사이트(tokyo-dome.co.jp/e/dome/)에서 확인한 경기 일정대로라면 홈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 마린스의 이스턴리그(2군) 경기가 있는 날이니.

가장 싼 내외야 자유석 표를 1000엔(약 1만4000원) 주고 산 뒤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파는 아다디스 매장에 갔다. 남자 점원이 다가와 “야구 구경하시게요?”라고 묻더니 500엔 할인권을 줬다. 매표소에서 돌려받은 500엔에 500엔을 더해 1000엔짜리 치킨 도시락을 샀다. 천장 뚜껑이 있는 돔 구장은 장난감 같았다. 이승엽 선수가 출루를 하자 관중은 열렬히 환호했다. 야구의 역사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야구박물관, 도쿄돔 시티 놀이시설 등 도쿄돔에서 혼자 놀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퍼즐 6: 장인정신의 축소판, 도쿄의 잡화

개인적으로는, 도쿄에 가면 행복해지는 이유 중에 디자인 잡화 구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오래된 단골 잡화 가게 세 곳을 소개하자면 긴자의 ‘이토야(伊東屋)’와 ‘규쿄도(鳩居堂)’, 오모테산도(表參道)힐스 등에 있는 ‘델포닉스’다.

1904년 창업한 문구점 이토야의 긴자 본점은 긴자 ‘불가리’ 바로 옆에 있다. 이토야 본점을 이번에 들러보니 ‘트래블러스 노트북’이란 이름의 DIY 여행자용 수첩이 프로모션 중이었다. 감촉 좋은 가죽 커버에 각종 속지를 취향대로 끼워 넣을 수 있는데다 두 시간 정도 기다리면 커버에 영문으로 이름도 새길 수 있다. 구리 빛 청동으로 만든 필통은 추억의 양은 도시락 느낌이었다. 사각사각 쓰고 싶은 연필은 청동으로 뚜껑을 만들어 몽당연필도 소중하게 다루도록 배려했다. 오래된 것의 진가를 귀히 여기는 예쁜 마음이다.

400년 된 노포(老鋪)인 규쿄도는 최상급 종이로 만든 편지지와 봉투 등을 다루기에 일왕 가(家)도 청첩장을 주문한다고 한다. 델포닉스에선 안경테 모양의 책갈피를 넋 놓고 봤다.

이번 도쿄행에선 가구라자카(神樂坂)란 보석 같은 동네를 발견했다. 예로부터 일본의 문예가들이 많이 살아온 이 동네는 ‘도쿄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이국적이면서도 일본의 전통 상점이 많은 매우 독특한 장소다.

평범한 외관의 소마야(相馬屋) 문구점을 일부러 찾아간 건 세피아 색으로 가는 줄이 그려 있는 옛날 원고지를 사기 위해서였다.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 시대에 원고지와 연필이라니. 혹자는 ‘옛날 사람’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라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연서(戀書)를 좋아할 것 같아요. 도쿄 감성의 당신이라면 말예요.

글·사진 도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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