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문학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방’이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원룸과 고시원, 노래방, 여관방에 틀어박혔다. 제도권 사회에 진입하지 못해 방에 머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최근의 소설에선 이들이 방에서 나와 도시와 맞닥뜨리는 징후가 보인다. 스스로를 작은 방 안에 가두는 대신 도시 곳곳을 떠돌고 헤매는 인물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서 단편의 많은 인물을 쪽방에 뉘어 놓았던 작가 김애란 씨(30)는 계간 ‘자음과모음’ 여름호에 발표한 단편 ‘물속 골리앗’에서 물에 잠긴 도시에 혼자 살아남는 주인공을 그렸다. 올여름 출간된 황정은 씨(34)의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에서 주인공 남녀는 도심 한가운데 전자상가에서 일한다. 이 상가는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평론가 강지희 씨는 이처럼 도시와 정면으로 마주한 소설들이 특히 낙관적 전망 대신 묵시록적 비전을 보여준다는 데 주목한다. 강지희 씨는 계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서 ‘도시의 악몽을 빠져나오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젊은 작가의 소설들이 비관적인 도시의 풍경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평했다. 최근의 소설에서 도시는 폭설에 뒤덮이고(김경욱 단편 ‘소년은 늙지 않는다’, ‘한국문학’ 여름호), 물에 잠기며(김애란 단편 ‘물속 골리앗’),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황정은 단편 ‘옹기전’, ‘현대문학’ 6월호).
평론가들은 최근의 사회적인 이슈들이 작가의 시선을 ‘방 밖으로’ 돌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한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는 방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재앙이 됐다. 개발 지상주의가 오히려 사람들을 내모는 현실, 그 뒤에 놓인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용산 참사 등의 문제가 크게 다가온 것”이라고 말한다. 강지희 씨도 “‘디자인’이라는 도시 프로젝트가 인위적인 재개발을 세련된 방식으로 덮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서,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균열과 갈등을 작가들이 포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고은 씨(30)가 '한국문학' 여름호에 발표한 단편 ‘Q’도 도시 재개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담고 있다. 주인공 소설가는 Q라는 도시의 ‘문화산책도시 프로젝트’를 위한 장편소설 주문을 받아들이지만, 재개발이 완성되면 자신은 쫓겨나리라는 생각에 무작정 도망친다. 황정은 씨는 좀 더 직접적으로 ‘백의 그림자’의 배경을 용산에 있는 전자상가로 삼는다.
도시에 대한 문학의 관심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와 ‘개인의 발견’이 이뤄진 1990년대에도 활발했다. 그러나 농촌을 유토피아로 삼으면서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도시 비판을 가했던 1970년대, 급격하게 변화하는 도시를 매혹의 공간으로 조망하면서 진정성을 의심했던 1990년대와 달리 2000년대는 도시를 재앙의 터로 삼아 SF적 상상력을 기법으로 삼는다는 게 특징이다.
황량한 미래라는 시간에서 철거를 앞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소년은 늙지 않는다’를 쓴 김경욱 씨는 “도시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보면서 현재가 얼마나 문제인지 생각해보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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