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 헝가리 부다페스트(7월26일)~루마니아 부쿠레슈티(28일)~불가리아 소피아~그리스(30일)
7월26일 낮 12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1박2일만에 체코에서 출발하여 폴란드, 슬로바키아를 거쳐 헝가리로 4개국을 이동한 셈이다. 부다페스트 야경도 '세계적'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았다. 프라하처럼 옛 건물에 한껏 조명을 비추어 만든 낭만적인 야경이었다. 민박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컷 찍고 밤거리를 천천히 산책했다.
민박집에서는 베를린에 이어 여행루트에 대한 2차 토론을 벌였다. 그리스까지 가는 여정이 너무 촉박하다고 하는 둘째와 그리스 이후의 나라와 도시를 많이 보고자 하는 막내가 새벽까지 논쟁을 이어갔다.
모두가 그리스 아테네로 가자는 데는 동의했다. 아테네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도시를 찬찬히 본다면 아테네 이후 도시들을 생략해야 하고, 조금 서둘러 지나치면 아테네 이후의 도시를 찬찬히 볼 수 있다. 이 같은 일정 논란은 함께 하는 여행길에선 불가피한 것이다.
정해진 거리와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 소득이 없는 토론이었으나 피곤한 주행으로 날카로워진 상태였기에 서로의 감정까지도 드러내게 됐다. 결국 막내는 민박집 예약을 다 취소하고 하루를 늘려 새로이 일정을 짜야 했다. ■ 동유럽을 관통해 아테네까지 가는 길
부다페스트를 걸으며 성과 성당꼭대기에 올라 사진을 찍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느지막이 출발했다. 해는 점점 더 짧아지고 이곳 동유럽의 길 조명 상태는 양호한 편이 아니었다. 또 공사구간에서 우회도로를 만나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12시 가까이 되어 도로변의 여관을 숙소로 정했다. 러시아 가스트니짜와 비슷한 가격에 좀 더 깨끗하고 친절했다.
일인당 15유로(약 2만5000원) 정도에 아침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지금까지 왜 한인민박에서만 묵었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광지를 벗어난 동유럽의 물가는 지금까지 유럽의 1/3수준이고 우리나라의 반값수준이었다. 이것저것 시켜먹어도 보고 시원한 음료수도 욕심껏 사먹을 수 있었다.
이틀에 걸쳐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로 향했다. 루마니아의 도로 양쪽은 옥수수 밭과 해바라기 밭의 연속이었다. 특히 만개한 해바라기들로 길 주변은 장관이었다. 해바라기로 가득 찬 언덕에 잠시 서서 감상하고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그 많은 해바라기들이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대부분이 북동방향 즉 일출을 바라보고 있었고 단지 한 밭의 꽃들만 서북방향 일몰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마니아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터크로스 경기가 열리는 나라이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서도 곳곳의 산에서 내려온,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모터크로스 바이커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동유럽의 지방도시를 거치면서 보니 우리나라 지방도로변의 아파트와 같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큐레슈티는 여타 유럽의 도시처럼 관광용 성도 성당도 없어 보였다. 냉전시대 때에 지어진 듯한 근대식 건물이 낡아 도시의 대부분은 우중충했다.
시내 중심 거리에서 인증사진 한 컷 찍고 호텔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인터넷으로 다음 도시와 도로 정보를 확인하고 불가리아 소피아로 향했다.
소피아는 단숨에 내쳐 달려 저녁 6시경에 도착했다. 부큐레슈티보다는 조금 더 관광지 적인 모습이 있고, 사람들도 좀 더 활기가 있어 보였다. 길거리 상점들도 뭔가 좀 더 깨끗하고 잘 정돈된 듯했다. 이미 어둑어둑해져 도시 관광을 하기는 힘들 것 같아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광장 주변에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꽤 화려해 보이는 식당이지만 가격은 한국의 절반수준이었다. 6~7가지 요리를 시켜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했다. 언제나 여행길에선 가격과 맛으로 고생하기 마련인데 간만에 음식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킨 식사였다. 마지막으로 불가리아 요거트로 마무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 그리스 국경 100km 전쯤에 도로변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 서유럽의 1/3 서울의 1/2 너무나도 행복했던 동유럽 물가
동유럽의 물가는 우리에게 미소를 준다. 그러나 그럴 듯한 둘째의 심각한 표정 연기로 숙박비를 더 깎아 아침식사 포함 50유로 정도에 낙찰을 보았다. 여장을 풀고 호텔의 식당에 내려와 맥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동안 덩치가 좋은 호텔 주인 가족들은 우리의 여행 얘기를 듣고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아침 식사가 더 풍요로웠다.
그 레스토랑만의 비법으로 구운 고기들까지도 맛을 보라며 제공하여 아침부터 배부르게 먹고 호텔식구들과 모터사이클을 배경으로, 또 주방그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이메일 연락처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그리스 국경을 넘자 도로 상황은 좋아졌다. 좀 더 달려 주요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독일의 아우토반보다도 더 좋은 것 같았다. 단 유료도로였다. 아테네까지 예닐곱 군데의 요금소를 지나 모터사이클당 15유로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요금소마다 정차해 장갑을 벗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내고 잔돈 받고, 다시 장갑을 착용해 출발하는 번거로움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어려움은 지금 현재 그리스 화물차들의 파업으로 주유소 대란이라는 사실. 고속도로변의 주유소들은 거의 모두 기름이 없어 휴업중이었다. 불가리아 뉴스를 보고 기름을 가득 채워왔지만 상황이 이 정도 인지는 몰랐다.
다시 절약운전 모드다. 이제는 시속 80km를 유지해야 했다. 이렇게 시원히 뚫린 도로를 거북이걸음으로 달려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 국경을 넘으며 기온은 35도를 훌쩍 넘어섰다. 2시간이면 주파할 거리를 3시간동안 가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지쳐왔다. 절약운전으로 400km 이상을 주행하면서 주행가능한 거리가 50km 안팎이 남은 상황에서 주도로를 빠져나와 시골마을로 들어서서 기름을 파는 주유소를 찾아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 기름을 가득 주유하고 일단 아테네까지 내쳐 들어갔다.
밤늦게 들어선 아테네에서 숙소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다. 아쉽게도 우리 GPS 항법장치에 그리스는 캠핑장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몇몇 곳을 둘러보다 막내가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아테네 한인 민박집에 찾아가니 다행히 빈 자리가 있어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이날 하루는 정말 많은 행운들이 우리 편에 서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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