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 이탈리아 베네치아(8월4일)~프랑스 니스(5일)~스페인 바르셀로나(7일)~포르투갈 호까곶(8일)
베네치아는 사방이 운하로 둘러싸여 있다. 주요 관광지 안으로는 자동차나 바이크가 입장할 수 없었다. 사실 베네치아는 수상버스나 택시 곤도라가 유명한 도시다.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관광을 끝마친 이후 곧장 다음 도시로 이동해야했기 때문에 바이크를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다.
불과 3~4시간만 주차하면 그만인데 이곳 유료주차장은 하루치를 달라고 요구한다. 결국 막내가 앞장서 인근 주차장을 수소문한 끝에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주차할 수 있었다.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 유럽에 당도한 이후 바이크 주차하는 것도 관광지를 결정해 움직이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가 됐다. 세 명의 의사결정을 한데로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막내인 필자가 3년 전의 혼자 유럽배낭여행 기억을 되짚으며 일정을 관리하기로 했다. 베네치아의 유명 관광지를 보고나니 점심시간이 됐다.
■베네치아를 슬쩍 보고 이제는 최종 목표를 향해…
오전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이제 긴 여정을 마무리할 포르투갈로 향한다.
포르투갈까지는 가장 짧은 직선 코스를 선택했다. 잘 정비된 고속도로가 펼쳐졌지만 유료도로였기에 무척이나 비싼 코스이기도 했다. 장점이라면 그리스처럼 톨게이트가 많지 않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들어 설 때 표를 뽑고 나갈 때 정산하는 익숙한 방식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유료 고속도로에는 30㎞마다 잘 정비된 휴게소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들을 이제야 보게 만나게 되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프랑스 니스로 향하는 지중해변 고속도로 'A10/E80번' 도로는 아름다운 지중해 해안가 마을과 작은 도시들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적당했다.
그러나 도로가 해안과 절벽에 터널과 교각으로 연결되어 있어 아찔한 순간도 자주 연출됐다. 왼편으로 지중해를 감상하는 동안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교각의 높이는 족히 100m는 넘어 모터사이클이 바람에 요동쳤던 것이다. 또 시시때때로 폭우까지 마주쳐야 했으니 바이크 운전자 입장에서는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들 해안 도시 중에 가장 큰 도시가 모나코이다. 독립국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해변 기슭에 위치한 나라이다. 프랑스의 지중해 해변의 에제라는 마을 또한 인상적인 이미지로 남았다. 해변이 아름답다는 니스에 도달하니 기온이 쌀쌀했다. 그리스 해변에서 그을린 몸을 다시 한 번 멋있게 태워보겠다는 욕심은 간단하게 포기했다.
니스에서부터 펼쳐진 도로는 해변에서 멀어져 다시 평이한 고속도로가 되고 말았다. 8월7일 아침 일찍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들어가기 위해 가능한 만큼만 주행을 하고 숙식하기로 결정했다. 밤 11시가 넘어 고속도로변의 몇몇 싸구려 호텔에 들려봤으나 이미 객실은 만석이어 포기하고 고속도로 간이 휴게소 주차장의 풀밭에 텐트를 치고서야 하루 일정을 마감할 수 있었다.
■지중해를 끼고 남부 유럽을 횡단… 아름다운 풍광에도 긴장의 연속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 채비를 마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표지판뿐인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넘어 150㎞에 통행료가 15유로나 하는 비싼 고속도로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입성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여행을 마치고 우리들의 애마를 안전하게 귀국시킬 선적회사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헬싱키에서 셋째의 경우 한국 동호회 친구가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주어 단지 모터사이클만 가져다주면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조금 복잡했다.
우선 최종목적지인 포르투갈은 한국과의 교역이 적은 탓에 출발 전에 모터사이클을 발송해주겠다는 업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스페인의 한 업체가 확답 없이 방문상담을 하라는 답장에 희망을 걸었더랬다. 그 업체가 바로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바르셀로나 화물항구에 위치한 업체에 도착하여 우리 신분을 밝히자 이름이 '하비에르'라는 부장이 우리를 직접 맞이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의 여행에 관심을 가졌다. 사실 우리의 도전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빛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단 1200㎞만을 남긴 우리의 무용담에 하비에르는 부러움의 눈빛을 보내며 보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약속한다.
그는 지난주에 왕년의 테니스 스타 나브라틸로바의 할리데이비슨을 선적할 일이 있었는데 모터사이클이 다치지 않게 나무로 박스를 짜는데 고생했다는 얘기를 건넨다. 이에 우리는 "길에서 험하게 다룬 모터사이클이니 그냥 컨테이너에 세 대를 넣고 묶어서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고 응수해 확답을 받아냈다.
결국 일정은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먼저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포르투갈에 당도한 뒤, 마드리드로 되돌아와 화물회사에 모터사이클 갖다 놓는다. 그러면 그 곳에서 바이크를 컨테이너에 포장해 발렌시아로 보낸 후 배에 선적해 부산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비용은 간략하게 처리해도 약 36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단다.
생각보다는 비싼 금액이었지만 일정에 큰 부담 없이 처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모터사이클의 귀국까지 준비하고 나니 정말 여행의 막바지임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나에서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 거리 시장을 둘러본 후 숙소에서 여행을 마무리할 계획을 세운다. 나와 막내는 마드리드에서 귀국을 하기로 하고 둘째는 이 기회에 혼자라도 파리와 로마를 둘러보겠다고 의사를 밝힌다.
인천행 비행기표까지 예약을 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목적지는 아직도 1200㎞나 남았는데 갑자기 한국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구엘 공원에서 오전을 보내고 포르투갈을 향한다. 가는 길에 마드리드는 들리지 않기로 하고 지나쳐 약 800㎞ 주행하여 프랑스에서처럼 고속도로변 주차장에서 야영을 한다.
이 텐트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다. 우리는 8만 원 조금 안되는 이 저가형 국산 텐트를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다. 30박이 넘게 텐트에서 생활했기에 험하게 다루어져 군데군데 찢긴 곳도 있었고 기름 얼룩도 적지 않게 배었다. 그러나 이 텐트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아침에 일어나 귀국 짐을 줄이기 위해 주차장 휴지통에 버릴 때는 미안한 마음에 갑자기 울컥한 기분이 느껴졌다.
■30여일을 함께 한 텐트를 폐기처분하니 갑자기 울컥…
이제 남은 길은 400㎞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을 지나 호까곶, 즉 유럽대륙의 최서단에 당도하는 것으로 여행은 끝이 난다. 날씨는 흐리고 간혹 비가 흩뿌린다. 머릿속으로는 마지막까지 사고내지 말고 조심해서 가자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구불구불 작은 마을길 끝에 위치한 호까곶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관광객이었지만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사람들로 비쳐졌다. 모터사이클을 세우자 신기하게 보였는지 관광객들이 웅성이며 모여든다.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이곳에 당도한 이들에게 러시아와 몽골을 횡단하고 유럽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을 거쳐 이곳에 당도한 우리 일행은 신선한 충격임이 분명했다.
모터사이클에 모인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해주고 어울려 사진 찍고 우리끼리도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기를 반복했다. 딱히 볼 것도 없는 해안 절벽이지만 우리는 한 시간도 넘게 그곳을 서성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을 무사히 완주했다는 기쁨은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으로 바뀐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환송을 받으며 출발해서 62일, 총 2만4500㎞, 그리고 20개국을 여행하여 최종목적지까지 무사하게 도착한 것이다. 이 여행은 우리 팀의 여행이기도 했지만, 우리를 부러움 속에서 환송해주고 계속 응원해준 모든 사람에게 "나도 떠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잃었는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것을 따지고 있자면 출발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도전해 답을 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국은 이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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