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수애당(水涯堂·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6호)에 전주 류(柳)씨 가문 며느리 5명이 모였습니다. 저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네요. 열기 없는 바람 한 줄기에 치맛자락이 나풀거립니다. 이 일대는 전주 류씨 집성촌입니다. 수애당은 독립운동을 한 수애 류진걸 선생이 1939년에 지은 집이지요. 집 뒤로 591m의 아기산이, 집 앞으로 임하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한복 어떻노.”
“색깔 곱네.”
“항렬로 따지면 내가 니 아지매다. 옛날에는 꼬박꼬박 존댓말 쓰고 그랬다. 항렬이 열 살은 접고 간다 카드라. 세상 좋아졌재.”
“요새 누가 그런 거 따지노.”
정영교(74), 이무호 할머니(73)가 서로 티격태격합니다만, 눈가에는 웃음을 머금고 있네요. 임양화 할머니(79)는 ‘큰 언니’답게 빙긋 웃으며 이들을 바라봅니다.
널찍한 대청마루에는 토란대, 쪽파, 쇠고기, 사과, 배, 곶감, 호두, 달걀, 밀가루, 떡이 한 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과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알루미늄 쟁반도 준비해 놓았네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들입니다. 할머니들은 수애당의 추석맞이를 도우러 온 참이에요. 차례상 준비를 하기 위해 잘 싸둔 제기(祭器)도 꺼내 왔습니다.
수애당의 젊은 안주인 문정현 씨(43)는 이리저리 동동거리며 돌아다니느라 발이 안 보일 정도입니다. 생선찜과 닭조림이 잘되고 있는지 수시로 부엌을 살피면서 할머니들의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시어머니 이동여 씨(74)가 또 부릅니다.
“야야, 당근 어디 있노. 당근이 있어야 산적 색깔이 이쁘다. 얼른 갖고 온나.”
서울 생활을 하던 문 씨가 남매를 데리고 남편 따라 시부모 두 분이 지키고 있던 수애당으로 내려온 지 10여 년째. 이제는 차례상이며 기제사(기일에 지내는 제사)상은 뚝딱 차려냅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그의 말투에 안동 사투리가 슬쩍 섞여 나오기까지 합니다.
시어머니는 “우리 ‘새 사람’이 몇 해 지나보이 아무케나 잘한다”고 은근슬쩍 칭찬을 합니다. 가족끼리는 ‘에미’라고 칭하지만 손자 승민(20)이 대학생이 된 지금도 며느리를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올봄 이상기온과 냉해에 이어 태풍 ‘곤파스’가 과수원과 논밭을 휩쓸고 간 터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문 씨는 어른 주먹만 한 사과 3개를 1만3600원에 샀다면서 어이없어 합니다. 할머니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옛날에는 전 하나 부칠라 케도 집에서 키우는 닭이 달걀 낳기를 기다렸다. 요새사 돈만 주면 과일이고 뭐고 천지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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