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전어 굽는 냄새… 꽃게탕 끓는 소리… 아! 가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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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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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와 수꽃게


‘한 접시 바다의 뼈를 발라/식탁 위에 눕혀 놓고는/소주 한 잔에 떠올리는/비린 추억의 가을/세월처럼 덩달아 가버린 날이/가지런히 누워 물결 포개면/…천리의 근심도 만리의 우울도/한 접시 바다를 길어/한 잔 술로 풀어 마시며/풍편에도 소식이 없는 너의/안부를 버무려 식초를 친다.’ <김창근의 ‘가을전어’에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입맛이 돋는다. 저절로 전어구이가 떠오른다. 그렇다. 가을은 전어를 먹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전어 머리에 깨가 서 말이다. 기름이 봄보다 3배는 더 올랐다. 여기저기서 술꾼들이 전어구이 안주로 술 한잔 하자고 성화다.

언제부터 전어가 ‘대한민국 가을 국민생선’이 됐을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전어는 잡어였다. 너무 흔해 개도 안 물어간다는 생선이었다. 값도 형편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됐다. 전어팔자 시간문제였다. 바다농사의 주인공이 바뀐 것이다. 명태나 조기 등 기존 스타들이 퇴장한 자리에 전어가 꿰차고 들어왔다.

전어는 남해안 서해안 연안에서 잡힌다. 주로 얕은 바다에서 논다. 고등어 청어처럼 등 푸른 생선이다. 산란기는 4, 5월. 알을 낳고 나면 몸이 푸석하다. 그래서 ‘봄 전어는 개도 안 먹는다’.

전어는 자연산이라야 고소하다. 양식 전어는 머리에 깨가 한 되도 안 들어있다. 기름기는 많지만 고소하지 않다. 바다에서 전어가 많이 잡히면 양식 전어는 힘을 못 쓴다. 자연산 전어 값이 싼데 굳이 양식 전어를 찾을 리 없다. 문제는 전어가 잘 잡히지 않을 때다. 자연산 전어가 금값이 되면 웬만한 횟집에선 양식을 쓴다.

살찐 전어는 양식일 가능성이 크다. 양식 전어는 살집이 지나치게 붙었다. 뱃살 라인이 약간 처졌다. 자연산 전어는 배가 사슴처럼 날씬하다. 기름기가 양식보다 많지 않지만 고소하다. 전어를 노릇하게 구운 뒤, 머리를 깨물어 그 즙을 핥아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전어구이는 대가리부터 통째로 덥석 깨물면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전어구이는 우선 전어 몸통에 2cm 간격으로 칼집을 낸다. 그 다음엔 굵은 소금을 뿌린 뒤 1시간 정도 재워둔다. 그것을 석쇠에 노릇노릇 구워 먹으면 된다. 좀 재워둬야 비린내가 안 난다. 전어구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고 했지만 요즘 며느리들은 한번 집 나가면 낙장불입, 끝이다. 아무리 전어 굽는 냄새가 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전어회는 뼈째 어슷하게 길게 일자로 썬다. 머리 쪽에서 꼬리 쪽으로 썬다. 물론 비늘 벗겨내고 머리와 꼬리지느러미는 잘라낸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크기가 15cm쯤 되는 게 뼈도 부드럽고 맛도 좋다. 자연산 전어는 9월 중순 무렵에 잡힌 것이 알맞다. 양식 전어는 아예 적당하게 키워 시장에 낸다.

전어구이나 전어회보다 달보드레하고 쌉싸래한 맛을 내는 것이 밤젓이다. 밤젓이란 전어 창자 중에서 밤톨(돌기)만을 따내어 젓갈을 담근 것을 말한다. 김 모락모락 나는 햅쌀밥에 밤젓 섞어 비벼 먹으면 황홀하다.


‘바닷가 포장마차 곰보아줌마네/꽃게탕 먹을 때면 소주보다/할머니 생각난다//집게다리 하나도 열 손가락 다 적시며/쪽쪽 빨아가며 맛있게 드시던/자식 일에 열 손가락 열 발가락/다 젖는 줄 모르셨던/우리 할머니,/생각이 난다’ <김병수의 ‘꽃게탕’에서>
왜 꽃게는 봄에는 암컷이 많이 잡히고, 가을엔 수컷이 많이 잡힐까. 왜 봄엔 암컷이 맛있고, 가을엔 수컷이 맛있을까? 꽃게가 사람 입맛에 맞춰 일부러 그렇게 잡혀주는 걸까? 꽃게는 의외로 영리하다. 바보가 아니다.

수꽃게는 가을을 탄다. 바람이 난다. 암컷을 찾아 여기저기 쏘다닌다. 가을에 수정을 해야 암컷들이 봄에 산란을 한다. 하지만 암컷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껍데기를 벗고 한자리에 다소곳이 엎드려 있다. 껍데기가 두꺼워져야 겨울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수컷들은 여름에 껍데기를 벗은 뒤라 이미 다시 껍데기가 두꺼워진 상태다. 여기저기 암컷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그러다 그물에 걸린다. 봄엔 암컷들이 알을 낳으러 연안으로 몰려온다. 그땐 수컷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꽃게는 ‘따로 또 같이’ 사는 부부인 것이다. 결국 봄엔 알이 가득 찬 암꽃게가 맛있고, 가을엔 살이 차진 수꽃게가 쫀득쫀득하다. 가을 암게는 알을 낳은 뒤라 살이 푸석하다. 7, 8월은 잡지 못하는 기간이다. 이땐 보통 냉동꽃게를 먹는다.

암컷은 등딱지가 어두운 갈색인 데다 아래쪽에 흰무늬가 있다. 수컷은 초록빛을 띤 짙은 갈색이다. 하얀 배딱지는 암컷이 둥글고, 수컷은 삼각 모양으로 뾰족하다.

꽃게를 고를 땐 우선 들어봐서 묵직해야 한다. 요즘 암게는 수게에 비해 가볍다. 손가락으로 눌러 봤을 때 단단하고 물이 나지 않아야 한다. 배가 희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맛도 신선하다. 다리 10개가 모두 붙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꽃게는 다리가 양쪽 5개씩 모두 10개가 달려 있다. 가장 위쪽 집게다리로 작은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다. 나머지 4쌍 다리는 옆걸음질 치거나 헤엄칠 때 쓴다. 맨 아래 1쌍 다리는 부채 모양으로 넙적 평평해 헤엄치기에 안성맞춤이다.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꽃게탕이 일품이다. 얼큰하고 시원한 데다 구수한 맛이 좋다. 쌀뜨물, 다시마, 무, 멸치 등으로 국물을 우려낸 뒤, 거기에 된장, 고추장(1대2 비율)을 푼다. 그 다음엔 국물에 꽃게와 감자 애호박 양파 쪽파 버섯 고추 오징어 등을 썰어 넣고 끓이면 된다. 양념은 고춧가루 맛술 마늘 소금 생강 후추로 한다. 어느 정도 끓고 난 뒤 마지막엔 쑥갓 미나리를 넣어 풋풋하고 상큼한 맛을 곁들인다.

게는 무슨 요리를 해도 깊은 맛, 곰삭은 맛, 감칠맛이 난다. 게장의 ‘곤곤한’ 맛이 그렇고, 꽃게탕의 매콤새콤한 맛이 그렇다. 게 속에는 조미료의 주성분인 글루탐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찰찰 부어 한잔 또 한잔 마시며 어둠이 진하게 졸아들수록 얼큰해지는 꽃게탕 떠먹을 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국물 속에 가라앉으면서도 둥글넓적한 등판 옆구리에 뾰족하게 담금질하던 창끝과 끝까지 오므리지 못하고 벌겋게 경련하던 큰 집게발이 화끈화끈 가슴을 후벼대던 그 저녁’ <김영언의 ‘꽃게탕을 먹는 저녁’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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