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야, 못 볼 줄 알았는데 다시 왔네잉.” 4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상사면 용암마을. 마을에서 ‘당산’이라 부르는 정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할머니 10여 명은 “할머니이∼”를 외치며 달음박질해 오는 대학생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달 14일부터 23일까지 마을회관에 머물면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하며 정이 든 대학생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마을 이장의 아들 최동영 군(7)도 연방 “형아∼”를 부르며 대학생 이광호 씨(18)와 김병진 씨(19)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대학생 신은총 씨(19)는 “서울에 가서도 용암마을이 눈에 어른거려 학교생활로 바빠지기 전에 한 번 더 왔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학생들에게 그늘 쪽 자리를 내줬다. 정옥례 할머니(71)는 “엄벙덤벙 시간 보내다 보니 이름도 모른 채 가뿌러서 영 아쉬웠어. 저녁에 가만히 누워 생각하니 ‘어디 사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싶었지”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손을 덥석 잡은 할머니들의 손톱 군데군데에는 진분홍색 매니큐어가 남아 있다. 농사일에 매달리느라 손을 꾸밀 틈이 없는 할머니들에게 대학생들이 지난번에 해 드린 네일아트의 흔적이다. “손에 나비랑 꽃이랑 그려줬는데, 예쁘더구먼. 근데 다 지워져서…아까워 죽겄어.”
봉사활동 대학생들과 2주만에 재회 기쁨 나눠
‘대학생 농촌문활-문화배달부’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왔다간 지 약 2주가 지났지만 마을 사람들은 어제 일처럼 학생들을 떠올린다. 안순금 할머니(73)는 학생들이 진행한 마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손자들에게 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었다. “마이크 앞에 앉으니 떨리긴 했는데, 그래도 어때. 그 덕분에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온갖 신기한 건 다 해 봤네.” 학생들은 라디오방송을 한 것 외에 할머니들께 네일아트와 마사지를 해 드리고 마을회관 외벽에 그림도 그렸다. 콩국수를 만들어 마을 주민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박봉심 할머니(74)는 “회관 앞을 지날 때마다 벽화를 보면서 학생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마을 도서관 신재란 선생님(45)은 “마을 어르신들이 학생들 서울 올라갈 때 아침밥도 못 먹여 보냈다고 두고두고 후회하셨다”며 “학생들 덕에 온 마을에 문화의 향기가 넘쳐나고 다같이 웃을 수 있는 활력이 생겼다”고 전했다.
티셔츠 함께 제작… “온 마을에 문화향기 넘쳐”
어둠이 깔린 오후 7시, 마을 어른 10여 명이 마을 도서관에 모였다. 학생들과 함께 마을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얀 티셔츠에 ‘문화배달부’ ‘산사용암마을’ 문구가 새겨진 글자 틀을 올리고 염색물감을 칠하면서 할머니들은 “이거 입고 용암마을 단체 소풍가면 되겄다”라며 즐거워했다.
도서관을 나서던 할머니들이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이제 학생들 이름 안 잊어버릴 테니까 가끔 연락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근데 또 보고 싶어서 어쩐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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