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양혜왕에게, 이쪽에서는 仁政을 행하는데 敵國(적국)은 그 백성을 함정에 떨어뜨리고 물에 빠뜨리거든 왕이 가서 바로잡으면 對敵(대적)할 자가 없으리라고 말했다. 이어 仁者無敵(인자무적)이라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성어를 인용하여 사방 백리의 땅으로도 왕 노릇 할 수 있는 것은 이 점에 있으니 왕은 결코 의심하지 말고 仁政을 실행하라고 권유했다.
맹자에 따르면 군주가 省刑罰(생형벌·형벌을 줄임)과 薄稅斂(박세렴·세금 거둠을 적게 함)의 仁政을 행하고 奪其民時(탈기민시)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그 군주를 존중하게 된다. 만일 군주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윗사람을 원망하여 仁政을 베푸는 이웃나라 군주가 와서 자기 군주의 죄를 바로잡아 주길 고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상서’, 즉 ‘서경’의 ‘武成’편에 보면 주나라 武王이 殷(은)나라 紂(주)왕을 정벌할 때 牧野(목야)의 전투가 하도 치열해서 ‘피가 철철 흘러 절굿공이가 떠내려갔다’는 말이 있다. 맹자는 仁者無敵의 뜻을 미루어 포악한 자를 정벌하는 데 전투가 그토록 치열했을 리 없으니 이는 과장된 말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북송의 孔文仲(공문중)은 양혜왕은 원한의 보복을 목표로 삼았지만 맹자는 백성의 구제에 뜻을 두어 ‘오직 天吏(천리)만이 정벌할 수 있다’는 취지를 천명했다고 해설했다. 天吏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죄 있는 자를 토벌하고 덕 있는 자를 높여주는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왕도정치를 실행하는 군주를 가리킨다. 仁者無敵의 仁者란 곧 天吏에 다름 아니다.
양혜왕은 仁者無敵의 취지를 수용할 만한 군주가 아니었다. 맹자가 “왕께서는 청컨대 의심하지 마소서”라고 한 것은 그 심리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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