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교양학부 강의실. 학생 60여 명의 초롱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한 중년교수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 내용은 ‘사진의 비밀’. 사진에 과연 무슨 비밀이 존재할까.
“사진이란 프레임 내에 갇혀 있는 빛의 형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바깥에 존재하는 삶의 마음이다”는 명제를 두고 추사의 ‘세한도’, 들라크루아의 그림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스티글리츠의 1930년대 사진 등을 통해 ‘사진에 담긴 정신과 마음’을 다양하게 해석해 보이는 사람. 이 수업의 강사는 바로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58)이다.
현재 중앙대 대학원 사진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이수 중인 학생 신분이지만 사진학 강의를 맡게 된 것. 요즘 주 4일을 학교에서 보내며 저자, 사진작가, 메세나로서 왕성한 사진 관련 활동을 하는 그다. 사실 윤 회장은 경영 관련 저서 ‘거미를 배워라’, ‘열린 경영이야기’ 등 4권을 저술했으며 성균관대에서 오랫동안 경영학 겸임교수를 지낸 경영학박사다.
현재는 한국저축은행을 비롯해 금융 관련 회사들을 운영하는 경영자지만 경영에 관한 업무는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하고, 요즈음 본업보다는 사진 관련 활동에 주력하는 느낌이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가급적 사람을 만나지 않지만 사진 이야기만은 빗장을 풀었다.》 ―딴 분들과 달리 사진을 배워야겠다는 목적이 다른 느낌입니다.
“사진을 배우는 초기, 사진이 의미전달 매체로서 영향력 있고 효과적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제 삶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진 관련 일을 하셨습니다.
“사진을 시작한 지 이제 3년이 넘어갔네요. 그동안 ‘안단테 소스테누토’, ‘한명이’ 등 5권의 사진집과 ‘사진의 비밀’, ‘사진가치의 비밀’ 2권의 사진 관련 서적을 냈고 서울과 스페인에서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제 자신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만드는 재미였고요. 삶을 사진으로 풀어가는 재미와 이를 통해 제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쁨이 컸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3년은 짧은 시간이 아닐 수도 있죠.”
―오늘 강의실에도 카메라를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늘 가지고 다닌다고 봐야죠. 강의 때도 가지고 들어가니깐 저의 분신이나 다름없어요. 수업시간 중 학생들과 웃고 떠들며 서로 촬영을 놀이같이 하기도 합니다. 제가 주로 쓰는 카메라 기종은 캐논 EOS시리즈 중 1D Mark3이고, 렌즈는 캐논17-35광각 줌렌즈에서부터 500mm 망원렌즈까지 폭넓게 사용하는 편입니다.”
그는 아직도 젊은 사람들처럼 공부에 목마르다. 새롭게 배우는 공부는 그를 늘 들뜨게 한단다. “학교에 있으면 젊어지고 신천지에 온 느낌입니다. 사진 강의 뿐 아니라 미술, 연극영화, 음악 쪽 강의도 청강하는데 평소 관심 가졌던 분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 정말 좋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과 경험으로 사진을 배웁니다.
“처음 사진을 접한 곳은 삼성경제연구소(SERI)지만 자꾸만 생기는 사진에 대한 궁금증을 쫓아 사진집단 일우, 몇 분의 사진전문가, 사회교육원 등에서 배웠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좀 더 체계적인 학문의 길로 들어서 중앙대 대학원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에까지 와 버렸어요.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과정에 들어선 거죠. 틈나면 사진 관련 책도 쓰고요.”
이렇듯 사진의 길로 매진한 윤 회장은 자기의 자전적 모습이나 자신이 생각한 철학적, 인문학적 소재들을 사진적으로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증을 풀고 그의 사진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사진으로 풀어낸 실체’인 그의 사진집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사진집 ‘안단테 소스테누토(일부러 더디게)’는 제목이 음악적입니다.
“제 삶의 속도는 개인적으로 남들에 비해 굉장히 빨랐다는 느낌입니다. 빠른 세상에서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일부러 더디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유럽여행을 갔을 때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에게서 삶의 여유를 보았습니다. 이 사진집은 그런 모습을 포착한 것이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 담겼습니다. 제목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은 젊은 시절 제 인생의 한 축에는 클래식 음악이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잊고 살다 사진을 시작하면서 다시 접목이 되었어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960 제2악장은 안단테 소스테누토로 연주하게 되어있는 부분인데 제 사진들과 분위기가 비슷해 여기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그는 음악 애호가로서 음악적 지식 또한 사진 못지않아 보였다.
―‘소싸움’ 사진도 찍으셨습니다.
“제 고향인 진주는 소싸움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사진집 ‘한명이’는 싸움소의 이름이고 싸움소 한명이에 대한 기록입니다. 투우장에서 부딪치고 싸우며 상대가 도망갈 때까지 애를 쓰는 한명이의 모습에서 제 삶의 현 지점을 보았습니다. 한명이의 처절한 싸움은 바로 제 자신이 오버랩된 것이고 혹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는 공부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고 공부만 하며 살고 싶었다. 금융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이 전쟁터로 내몰렸다는 의미로 자신이 바로 싸움소 ‘한명이’가 된 것이다. 이 사진집은 자신을 세상에 존재케 한 기업인이었던 아버지에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치열한 삶을 영위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이는 사진작업이었다. ―네 번째 사진집 ‘곤지곤지’에 대한 얘기도 해주시죠.
“곤지곤지(坤地坤地)는 단동(壇童)10훈 중 하나입니다. 단군 이래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식과 눈을 마주치며 재미있게 가르치던 놀이입니다. 뜻은 하늘의 이치를 깨닫거든 사람과 만물이 서식하는 땅(곤지)의 이치도 깨달으라는 것이죠. 방법은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왼쪽 손바닥을 찍는 행위입니다. 아버지가 하늘이라면 땅은 곧 어머니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오른손 검지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왼손바닥을 사진 찍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바로 곤지곤지 놀이를 한 것이죠. 물론 진짜는 제 손금에서 어머니가 주신 삶의 비밀을 찾아내 사진집을 만든 것이고요.”
자신의 인생에서 기억나는 부분을 오려내 의미를 부여하고 사진적인 착상을 일궈내는 그만의 아이디어는 놀랍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로써 그는 ‘한명이’로 아버지를, ‘곤지곤지’로 어머니를 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게 됐다. 더불어 하늘과 땅의 이치를 저절로 깨달은 셈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집 중 1권만 만든 사진집이 있다면서요.
“돌아가신 법정 스님을 찍은 사진집으로 제목은 ‘봉선화 스님’입니다. 제가 스님과의 인연으로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기회가 많았어요. 이때 찍어 둔 사진을 모아 스님 사후에 스님을 기리는 의미로 사진집 1권을 만들었고 이는 스님이 거처하시던 강원도 수류산방에 비치하였습니다. 여러 권을 만드는 것은 스님의 유지를 훼손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사진집을 영상화했는데, 노영심 씨가 작곡하고 노래를 붙였지요.”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국사진사에 등장하는 주요 작가들의 사진을 조금씩 모으는 분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윤 회장이 당사자가 아닌가 싶어 물었더니 정말 본인이 맞았다. “한국사진사를 공부하면서 새로이 조명 받고 우리가 역사적으로 꼭 보존해야 할 사진들이 많다는 생각에…. 덕분에 이형록 사진가 님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는 최근 사진계 메세나로 떠올랐다. 처음엔 그의 성격처럼 드러내지 않는 메세나였다. 전시회가 열리면 직접 찾아가 작가와 얘기를 나누고 그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공을 들이다가 작품도 살짝 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사진은행과 갤러리를 만들고 수면 위로 나섰다.
―사진은행은 무슨 일을 하나요.
“쑥스럽습니다. 사진은행은 아직 초보 단계죠. 서민금융업을 하다 보니 이전에는 주요 고객층인 어르신들과 친밀한 판소리와 대중소설, 시인들을 주로 지원해 왔습니다. 3년 전부터 사진을 포함하면서 재단 이름을 사진은행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재단 출자 금액이 풍족하지 않지만, 가능한 정기적으로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진은행을 통해 수집된 사진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사진은행이 매입한 사진작품은 저희 갤러리와 저축은행 영업장에 전시되는 수준입니다. 현재는 이 정도지만 많은 사진 컬렉션이 이뤄지면 다양한 활용방안이 생기겠죠.” 그는 부산에 제비꽃이라는 이름의 사진갤러리를 만들었고 ‘제비꽃 사진가상’을 제정해 유능한 사진가에게 매년 시상하고 있다. ―사진가입니까, 금융인입니까.
“사진은 이제 제게 단순히 취미라기에는 어느 선을 넘은 듯하기도 하고…. 아무튼 사진은 시각매체라기보다는 제게 삶의 귀중함, 시간, 존재의 품성, 그리고 죽음 등을 깨우쳐 주는 사유적 매체라는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저의 경험과 삶에 기초한 새로운 사진세계를 밟아보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사진 그 자체는 삶의 한 표상일 뿐이지요. 암튼 사진 때문에 저는 명함이 두 개이고, 양복 입는 날도 거의 없어요.”
그가 운영하는 한국저축은행은 국내 굴지의 제2금융권 은행이다. 개인의 취미에 관한 인터뷰지만 본업과 관련된 일도 살짝 물었다.
―저축은행이 최근 정부로부터 많은 규제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만….
“저축은행들이 규모도 커졌고 호황을 누리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더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앞으로 2, 3년 동안 구조조정을 통해 거품을 걷어내고 더욱 견실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제도 금융권 안에서 영세상공인이나 개인, 서민들이 믿고 좀 더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겠죠.”
윤 회장은 남의 사진은 논리정연하게 이론으로 풀고 자신의 사진은 나름의 철학으로 포장한다. 어찌 보면 학자다. 그의 사진작품은 자신의 사진집 ‘무언가’에서처럼 바닷물의 일렁임이나 ‘곤지곤지’처럼 왼손바닥만을 찍어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남들의 시선을 이끌어낸다. 그래선지 그의 사진은 딱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냉철함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남의 아프고 슬픈 얘기를 그냥 흘려듣지 못하는 착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윤 회장의 사진사랑은 냉철해야 하는 금융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인생의 숨구멍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 그는 금융인과 사진가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인생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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