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그가 원래 도깨비가 살던 터야. 사람들이 집을 지으려고 하면 도깨비들이 와서 부수고 못살게 해서 ‘여기서 살고 싶다’고 청했더니 그럼 자기들을 위해 당산제를 지내 달라고 하데. 그 이후로 6·25전쟁 때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고 있지.”(우평마을 이장 오세동 씨) 전남 영광군 영광읍 우평마을은 원래 도깨비가 살던 터에 사람이 자리 잡고 들어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마을 이름은 지형이 소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11월 첫째 주 토요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 주변에 금줄을 치고 도깨비가 좋아하는 수수떡과 메밀묵, 마을 이름의 특성을 반영한 우족(牛足), 집집마다 준비한 음식과 마을에서 담근 술을 올려 제사를 지낸다. 제사와 함께 치르는 당산굿은 이 마을의 가장 큰 축제다.》
전남 영광군 영광읍 우평마을 주민들의 풍물굿놀이. 휘영청 밝은 달이 뜬 밤, 당산나무 아래에서 벌이는 풍물굿놀이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당산제의 전통을 지속시키고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사진 제공 우도농악보존회
어둠이 짙게 깔린 지난달 28일 저녁, 우평마을 마을회관에서 신명난 가락이 퍼져 나왔다. “덩 덩 더덩 따따 더더덩 더더덩 덩 덩 따 따….” 마을 어른 20여 명이 모여 꽹과리와 북, 장구를 들고 연주하는 오방진(五方陣) 가락이다. 이어 노랫소리도 울려 퍼졌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처자야∼.” 장구로 장단을 맞추는 박영란 씨(45)의 얼굴에 벙실벙실 웃음이 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손으로 박수를 치거나 무릎을 두드리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악기 연주와 노래가 끝난 뒤엔 회관 앞 당산나무 앞에 모여 도깨비 탈놀이를 배웠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었지만 앞으로 갔다 뒤로 빼는 발걸음과 손짓을 배우느라 얼굴엔 땀이 맺혔다.
마을 사람들이 풍물놀이와 탈놀이, 강강술래를 배우게 된 것은 올해 3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생활문화공동체사업에 선정돼 무형문화재 보유 단체인 우도농악보존회에서 일주일에 세 번 마을을 찾아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무형문화재 전승단체 강사들, 주 3일 ‘강강술래’ 등 수업
“요 수업 들으려고, 우린 드라마 보는 걸 작파해 부렀어! 아무도 안 빠지고 온당께.” 주민 이엽순 씨(64)는 “수업 있는 월, 화, 수요일은 바깥양반이 ‘밥은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퍼뜩 가소’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며 웃었다. 수업에 재미를 붙인 마을 어른들은 자신들이 부지런해지고 분위기가 활발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 5월부터 매달 수업 때 배운 내용을 선보이는 마을굿 축전을 시작했는데 지난달 25일에는 500명이 넘게 몰려 마을 입구가 때 아닌 교통난을 겪기도 했다. 마을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남순 할머니(71)는 “사람들도 많이 오고, 장구치고 노는 우리도 재미있어서 우리끼리는 ‘복 받았다’고 말해”라고 귀띔했다.
우평마을 주민들은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오후 8시만 되면 일찌감치 농사일을 끝내고 마을회관에 모여 풍물을 배운다 우도농악보존회의 수업을 통해 마을 노인들은 잊혀졌던 옛 기억을 조금씩 꺼내고 있다. 다른 지역의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며 우평마을에서 불렀던 강강술래의 가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홍경희 씨(44)는 “강강술래는 대부분 구성과 흐름이 비슷하지만 가사에는 각 마을 고유의 정서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도깨비에게 제를 올리는 당산나무를 ‘당산할아버지’ 혹은 ‘당산어르신’으로 부르며 예를 갖추는 전통도 강강술래 수업을 통해 되살아났다. 우평마을 강강술래는 당산나무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무릎을 굽힌 채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마무리한다. 마을 창조 설화인 도깨비 이야기를 탈놀이로 만드는 작업도 한창이다.
드라마 빠져 살던 노인들 “북치고 장구치니 너무 신나”
최용 우도농악보존회장은 “마을 사람들은 저녁마다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내니 우의도 깊어지고 삶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연희자의 입장에서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통을 복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탈놀이를 끝낸 어른들은 손에 손을 이어 잡고 강강술래를 시작했다. 서로의 손을 교차해 매듭처럼 꼬기도 하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 통로를 만들어 그 안을 통과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느리게 걷다 점점 빨라지며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하늘에다 베틀 걸고(강강술래) 구름 잡아 잉에 걸고(강강술래) 참나무 버두집에(강강술래) 얼그덩 절그덩 짜니랑께(강강술래) 뒷집 망구 불사러와(강강술래) 그 베 짜서 뭣헐랑가(강강술래) 우리 오빠 장개갈 때(강강술래) 등포당포 해줄라네(강강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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