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는 소설가 최제훈 씨. 그가 기존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틈새가 벌어지고 충돌이 일어난다. 거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홍진환 기자 ean@donga.com
이런 얘기들이 있다고 하자. 1993년 서울 K대의 교양과목 ‘영화 속의 여성들’ 중 영화 ‘퀴르발 남작의 성’에 대한 설명, 1932년 출판사 편집장에게 소설 ‘퀴르발 남작의 성’의 원고를 넘긴 작가 미셸 페로, 2004년 ‘퀴르발 남작의 성’을 리메이크한 영화를 찍은 감독 나카자와 사토시의 잡지 인터뷰, 2006년 네이버 블로그의 ‘도센 남작의 성’ 영화평, 1952년 영화 ‘퀴르발 남작의 성’ 주연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수정해 달라는 배우….
이 단편집의 표제작은 마치 타임머신에 탑승해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코스의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시점상 코스의 처음은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를 배치했지만) 르블랑 부부가 딸을 퀴르발 남작의 성에 하녀로 보내기 전 남작이 애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장면이다. 이 소문은 200년 뒤 프랑스에서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해피엔드 동화로 바뀐다.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 남작이 영리한 소년의 꾀에 넘어가 죽어버린다는 줄거리다. 그 손자 중 하나가 35년 뒤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서 자매간의 미묘한 질투를 덧입힌다. 19년 뒤 소설이 스크린에 옮겨질 때는 관객을 바짝 졸아들게 하는 호러 영화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1993년 서울의 대학 강의에 이르면 영화의 여주인공은 ‘관습화된 호러 영화 속 여성상을 탈피한 적극적인 내러티브의 주체’로 해석되고, 2004년 일본 감독은 영화의 해피엔드를 ‘욕망에 매몰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를 극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읽는다.
최제훈 씨는 ‘이야기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이렇게 소설로 답한다. 소문이 구전설화의 단계를 지나 소설로 자리 잡으면서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 모양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영화로 장르 이동을 하고 그 안에서 다시 몸을 바꾸면서(리메이크), 계속해서 ‘달리 읽힌다’.
이 실험가가 재료를 재구성하는 스타일은 퍽 재치 있다. 단편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에서 셜록 홈즈는 코넌 도일의 의문사를 추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단편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내용을 차용해 재구성한 것이다. 시체가 있는 현장에 남겨진 아령 하나, 시체의 주머니에서 나온 암호 등 단편의 재료들은 ‘셜롬 홈즈 시리즈’에 나왔던 것들이다. ‘괴물을 위한 변명’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시체 여럿을 모아 괴물 하나를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작가는 여러 개의 추론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성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서사적 실험을 하면서도 이야기의 매력을 지키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이 글쓰기에 투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이어붙이기’의 형식은 필연적으로 어긋남과 그로 인한 틈, 마찰을 빚는다. 작가의 주제의식이 발현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그는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서사의 오독을, ‘괴물을 위한 변명’에서는 인간 내면의 괴물을 붙잡아낸다. 경쾌한 재구성 뒤의 뒤통수치는 이 반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이 주는 서늘한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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