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나는 마흔아홉의 나이가 되었다.” 이 단순한 한 문장이 얼마나 무거운지. 마흔아홉의 시간이란 ‘어렴풋이 드리워진 우울증의 그림자가 치통처럼 길게 지속되는’ 날들이다. 나이의 무게감은 누구나 엇비슷하겠지만, 작가가 풀어낸 문장을 마주하면 그 감각이 새삼 육중하다.
윤대녕 씨의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은 이렇게 담백하고도 묵직한 산문으로 가득하다. ‘나이가 들면 외로워진다고 한다. 나도 벌써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며 짐짓 한탄스럽게 적다가도, 중년의 작가는 그간 쌓인 시간만큼 차곡차곡 쌓인 사람들과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실은 ‘외롭지 않은 마흔아홉’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린다. 70대 중반임에도 여전히 자식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소설 ‘데미안’을 선물해주며 소설가가 되려면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첫사랑, 경계근무를 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군대 고참…. 이뿐일까. 30대 중반에 아홉 살 아래 후배와 의형제를 맺었고 40대에는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연극계 사람들과 만나 각별하게 지내고 있다.
나이 듦에 대한 복잡한 심정을 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마흔 살 무렵에 봄을 맞았을 때는 들뜬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좀처럼 발을 들이지 않던 연탄구이 집을 드나들게 됐을 때 왜 그럴까 했더니, 어렸을 적 아버지를 찾으러 연탄구이 집을 찾았던 감춰둔 기억이 나온 것이었다. 10년 전에 노트북을 샀을 때 젊음과 늙음의 경계인 ‘청회색의 시절’이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던 작가는 이제 노트북을 바꾸면서 ‘지금부터는 회색의 시절이 시작되는 것일까?’라고 중얼거린다.
나이 들면서 깨닫는 것은 놀랍게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것인가’라는 새삼스러운 의혹이다. 연구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딱따구리 소리, 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 빨래의 주름을 펴기 위해 옷을 터는 소리 같은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작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행복해한다. 그 감동은 무심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우리에게, 설혹 나이가 그와 가깝지 않더라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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