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광주비엔날레]강운태“비엔날레는 창조도시 광주의 얼굴… 눈물 핑도는 감동”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4일 03시 00분


강운태 광주시장의 비엔날레 이야기

《강운태 광주시장(사진)은 “광주비엔날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 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눈물이 핑 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회한의 눈물이 아니라 보람과 감동의 씨앗이었다. 한마디로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고 만들어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이런 특별한 감회는 그가 15년 전 마지막 관선 광주시장 때 대통령에서부터 시민에 이르기까지 ‘비엔날레는 최고의 문화상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심어 그 꽃을 피워낸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질 만하다. 그는 지금도 광주를 찾은 수많은 인사에게 “비엔날레야말로 ‘창조도시 광주’의 얼굴이자 대표 문화상품”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당시 ‘비엔날레’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지 않았나.

“비엔날레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이 1993년 대통령비서관 재직 시절이었다. 이듬해 9월 마지막 관선시장으로 부임한 이후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소임은 5·18민주화운동의 쓰라린 상처와 한을 씻어내면서,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아이콘을 찾는 일이었다. 청와대 시절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 대해 단편적으로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비엔날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었으나 정작 주변에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금은 작고한 원로조각가 김영중 선생을 만나 비엔날레에 대한 여러 조언을 듣고 광주 개최 기본 틀을 짰고 시장에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광주비엔날레 창설을 공식발표한 것이다.”

―1995년 첫 비엔날레 개막 테이프를 끊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는데….

“가장 먼저 광주시민들과 예술인, 언론의 우려 섞인 시각을 불식하고 그분들을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1994년 말 열린 비엔날레 창설 관련 국제심포지엄 행사장은 반대 시위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비엔날레’ 창설을 서두르고 있던 이민섭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을 반 억지로 설득해 정부 지원을 이끌어 냈던 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었던 임영방 조직위원장이 갑자기 사의를 표명해 만류했던 일 등은 지금은 모두 추억거리가 됐다.”

―제1회 비엔날레는 관람객 182만 명을 기록하는 등 외형적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보다는 문화예술 행사의 국제화 지방화 측면에서 선도적 모델이 됐다는 평가도 있는데….


“먼저 당시 젊은 시장의 의지와 열정을 믿고 발 벗고 나선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비엔날레가 태어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승적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지역 예술인들의 헌신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열정과 노력이 모여 광주비엔날레는 한국 문화예술 사상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 역사 측면에서도 가히 기록적이었다. 그 성공을 모델로 주요 도시들이 앞 다퉈 문화이벤트를 창설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 경주문화엑스포 함평나비축제 전주소리축제 부천영화제 고양꽃박람회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공주자연예술비엔날레 등 지금은 성공한 수많은 문화이벤트가 생겨난 것이다.”

―앞으로 광주비엔날레는 어떤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지난달 2일 열린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강운태 광주시장, 광주비엔날레재단 상임부이사장, 마시밀리아노 조니 예술총감독 등과 함께 행사
의 성공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사진 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지난달 2일 열린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강운태 광주시장, 광주비엔날레재단 상임부이사장, 마시밀리아노 조니 예술총감독 등과 함께 행사 의 성공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사진 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전문가 중심의 비엔날레도 물론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함께하는 참여의 비엔날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광주에 화가가 얼마나 많은가. 화가들을 아파트단지별로, 직장단위로, 마을단위로 선생님으로 모셔 그 지도 아래 조각도 하고, 그 다음에 패널도 만들고, 유화도 그려보고 해서 비엔날레가 있는 해에 시민 콘테스트를 통해 상을 주는 등 시민 참여형 비엔날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의 양대 축제로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광주세계김치축제를 꼽을 수 있는데….

“1994년 시장에 부임하자 ‘미향(味鄕)’을 알리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여러 지역특산식품을 검토하다 ‘김치의 상품화’를 내걸면 그야말로 히트작이 되겠다 싶었다.

전국 각지마다 독특하고 맛깔스러운 김치가 있지만 갖은 양념을 한 김치는 역시 전라도가 최고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광주김치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인연을 시작으로 1996년 농림수산부 장관과 2000년 국회의원(광주 남구)을 지내면서 광주에 김치센터까지 건립하게 돼 뿌듯하게 생각한다.”

―새로운 광주시정 구호로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를 내걸었는데 이런 문화행사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시장 선거 때 ‘창조의 중심도시’라는 구호를 걸었다. 광주에서 만든 문화상품 음식 또는 기술, 도시 경영의 여러 행태 등에 이르기까지 ‘광주에서 하는 걸 보니까 참 멋있다’ ‘기왕이면 광주의 것을 본받자’ ‘광주 것을 베껴보자 본받아보자’ 이런 세간의 평이 널리 퍼져 결국 대한민국 다른 도시들의 모델, 모범이 되는 도시가 ‘창조의 중심 도시’라 할 것이다. 광주를 서울처럼 거대한 도시로 만들 수는 없다고 보지만 창조의 중심도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우수한 두뇌, 예술적 끼, 문화적 역량, 뜨거운 열정, 즉 광주사람들이 갖고 있는 유전자(DNA)를 활용해 나가면 능히 가능하다고 본다.

―시장으로서 창조도시 목표달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우선 미래 광주발전을 위한 5대 과제, 즉 앞으로 광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참여 소통의 자치공동체 △풍요로운 경제공동체 △멋들어진 문화공동체 △행복한 생태공동체 △세계 속의 인권평화공동체에 두고 싶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일자리 10만 개 창출을 비롯한 경제활성화, 자동차 가전 광(光)산업 등 기존 주력산업에 문화산업, 그린에너지산업을 포함해 미래가치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또 광주 연구개발(R&D)특구 개발 및 발광다이오드(LED)특화단지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성, 비엔날레, 김치축제, 첨단광엑스포 등 3대 축제를 세계적 문화관광상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떠나는 도심’에서 ‘돌아오는 도심’으로 만들고 2015년 유니버시아드를 단순한 체육대회가 아니라 문화와 평화, 경제가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명품대회로 완벽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김권 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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