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1995년 8월 22일 광주비엔날레조직위 도우미로부터 행사 입장권을 전달받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것 참 희한한 것 하데?”
1995년 2월 13일 연두순시차 광주를 방문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광주공항에 내려 광주시청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강운태 시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 시장은 이 말을 듣고 김 대통령이 비서실로부터 비엔날레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어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하겠다는 말을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업무보고 석상에서 나온 김 대통령의 발언은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비엔날레의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비쳤다. 강 시장은 업무보고장에서 오찬장으로 이동하는 17분간 다시 김 대통령에게 비엔날레의 개념과 문화도시로서 도약하고자 하는 광주의 희망을 간곡하게 전달했다.
강 시장은 당시 애타는 심정으로 대통령 전용차 안에서 나눴던 김 대통령과의 대화를 자신의 자서전 ‘미완의 광주, 창조의 중심도시로!’에서 그대로 옮겨 놓았다.
김 대통령은 “오찬장에서 다시 한 번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강조해 주십시오”라는 강 시장의 말에 “비엔날레, 그게 어느 나라 말이지?”라고 반문했다.
“네. 영어로 ‘바이 애뉴얼(bi annual)’, 즉 2년에 한 번이라는 뜻인데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비엔날레가 됐고, 맨 처음 국제 미술행사를 개최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사용되면서 지금은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시행사’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강 시장)
“아, 그렇구먼.”(김 대통령)
“대통령께서 요즘 세계화, 지방화를 많이 강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각 지역이 갖고 있는 특색이나 장점을 살려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곧 세계화이고 지방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향 광주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강 시장)
“강 시장 말이 맞아요. 이제는 지방 도시들이 스스로 노력해야 해요.”(김 대통령)
강 시장은 오찬장에 도착한 후 의전에 다소 어긋나는 것이긴 했지만 차 안에서 나눈 대화를 급히 정리한 메모를 김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김 대통령은 오찬 직후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광주 전남 시 도민 여러분!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인 문화예술 올림픽으로서 대전엑스포에 필적하는 국가적 행사인데 정부에서 ‘학’실하게 지원하겠습니다. 강 시장한테 들어보니 정부에서 예산도 안 주고 기구도 승인 안 했다는데, 예산도 줄 것이고 기구도 승인할 것이니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학’실하게 성공시키시길 바랍니다.”
광주비엔날레가 비로소 강 시장의 구상을 넘어 정부 승인과 함께 예산지원을 받는 국제행사로 규모를 갖추게 되는 순간이었다. 강 시장은 후일 자주 “김 대통령은 그날따라 연설을 아주 잘하셨다. 내가 메모해 건네 드린 내용보다 훨씬 더 충실하게 잘 전달해 광주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역시 노련한 정치가로서 기지와 순발력을 실감했다”고 그날의 진한 감동과 함께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