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광주비엔날레]“문화예술올림픽 비엔날레, 그것 참 희한한 것 하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4일 03시 00분


강운태 시장이 자서전서 밝힌 탄생 뒷이야기,당시 김영삼 대통령 정부지원 다짐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1995년 8월 22일 광주비엔날레조직위 도우미로부터 행사 입장권을 전달받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1995년 8월 22일 광주비엔날레조직위 도우미로부터 행사 입장권을 전달받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것 참 희한한 것 하데?”

1995년 2월 13일 연두순시차 광주를 방문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광주공항에 내려 광주시청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강운태 시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 시장은 이 말을 듣고 김 대통령이 비서실로부터 비엔날레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어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하겠다는 말을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업무보고 석상에서 나온 김 대통령의 발언은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비엔날레의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비쳤다. 강 시장은 업무보고장에서 오찬장으로 이동하는 17분간 다시 김 대통령에게 비엔날레의 개념과 문화도시로서 도약하고자 하는 광주의 희망을 간곡하게 전달했다.

강 시장은 당시 애타는 심정으로 대통령 전용차 안에서 나눴던 김 대통령과의 대화를 자신의 자서전 ‘미완의 광주, 창조의 중심도시로!’에서 그대로 옮겨 놓았다.

김 대통령은 “오찬장에서 다시 한 번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강조해 주십시오”라는 강 시장의 말에 “비엔날레, 그게 어느 나라 말이지?”라고 반문했다.

“네. 영어로 ‘바이 애뉴얼(bi annual)’, 즉 2년에 한 번이라는 뜻인데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비엔날레가 됐고, 맨 처음 국제 미술행사를 개최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사용되면서 지금은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시행사’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강 시장)

“아, 그렇구먼.”(김 대통령)

“대통령께서 요즘 세계화, 지방화를 많이 강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각 지역이 갖고 있는 특색이나 장점을 살려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곧 세계화이고 지방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향 광주에서 비엔날레를 개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강 시장)

“강 시장 말이 맞아요. 이제는 지방 도시들이 스스로 노력해야 해요.”(김 대통령)

강 시장은 오찬장에 도착한 후 의전에 다소 어긋나는 것이긴 했지만 차 안에서 나눈 대화를 급히 정리한 메모를 김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김 대통령은 오찬 직후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광주 전남 시 도민 여러분!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인 문화예술 올림픽으로서 대전엑스포에 필적하는 국가적 행사인데 정부에서 ‘학’실하게 지원하겠습니다. 강 시장한테 들어보니 정부에서 예산도 안 주고 기구도 승인 안 했다는데, 예산도 줄 것이고 기구도 승인할 것이니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학’실하게 성공시키시길 바랍니다.”

광주비엔날레가 비로소 강 시장의 구상을 넘어 정부 승인과 함께 예산지원을 받는 국제행사로 규모를 갖추게 되는 순간이었다. 강 시장은 후일 자주 “김 대통령은 그날따라 연설을 아주 잘하셨다. 내가 메모해 건네 드린 내용보다 훨씬 더 충실하게 잘 전달해 광주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역시 노련한 정치가로서 기지와 순발력을 실감했다”고 그날의 진한 감동과 함께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권 기자 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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