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억울한 ‘일제 전범 사형수’ 조선 청년의 묻혀버린 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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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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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
연출 ★★★☆ 연기 ★★★☆ 대본 ★★★ 무대 ★★★☆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쟁이 끝난 뒤 BC급 전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조선인 청년들의 비극을 그린 ‘적도 아래의 맥베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그들의 회색빛 운명이 친일-반일의 이분법을 뒤흔드는 질문을 던진다. 사진 제공 명동예술극장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쟁이 끝난 뒤 BC급 전범으로 몰려 처형당한 조선인 청년들의 비극을 그린 ‘적도 아래의 맥베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그들의 회색빛 운명이 친일-반일의 이분법을 뒤흔드는 질문을 던진다. 사진 제공 명동예술극장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정의신 작, 손진책 연출)의 포스터에서 주인공 춘길(서상원)은 꾹 다문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 담배 연기의 회색빛이야말로 이 연극을 관통하는 빛깔이다. 흑백의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불분명한 빛깔, 그러면서도 한없이 서글픈 빛깔.

연극은 재일교포 노인 춘길의 과거를 추적한다. 춘길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태면철도(泰緬鐵道) 건설 과정을 다룬 일본 독립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태국 논프라덕 역에 도착한다.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414km의 태면철도는 철도 건설에 동원된 6만여 명의 연합군 전쟁포로 중 1만3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철도’로 불린다. 춘길은 그들 연합군 포로의 감시원이었다.

제작비 부족으로 휴대전화에 묶인 감독, 촬영보다는 탈모가 더 걱정인 카메라맨, 다큐멘터리라면서 시나리오에 맞춰 촬영이 진행되는 것이 불만인 젊은 음향담당자…. 이 동상이몽의 제작진이 춘길에게 비밀로 한 다큐멘터리의 가제는 ‘포로수용소 한국감시원의 충격고백―나는 포로들의 죽음을 방치해 두었다’이다.

연극은 그렇게 선정적 다큐멘터리를 찍기 급급한 희극적 현실과 종전 후 전범신세로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 수감됐던 춘길의 비극적 과거를 넘나든다.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 씨는 실제 전범재판에서 2번 사형 언도를 받고 2번 감형된 이학래 씨의 사연을 토대로 춘길의 과거를 재구성한다.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42년 최고 30만 명에 이른 연합군 포로 감시를 위해 식민지 조선과 대만의 청년들을 차출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수는 3016명. 전후에 그중 129명이 전범 판결을 받았고 14명이 처형됐다. 연극 속 조선인 감시원들은 항변한다. 전쟁포로를 학대해선 안 된다는 제네바조약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일본군의 가혹한 훈련과 매타작을 통해 그들에게 각인된 것은 ‘살아남아서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은 수치’라는 일본인들의 포로관뿐이었다고.

하지만 일본군의 군홧발에 차여 온갖 더러운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그들이 정작 연합군 포로에겐 야차나 다름없었다. 연합군 포로 사망률이 독일과 이탈리아에선 4%였던 데 비해 일본의 경우 20%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를 명령한 일본인 A급 전범 중 처형자는 7명인 데 반해 BC급 조선인 전범 처형자는 23명에 이르렀다. 전쟁 기간 일본군의 동네북이었던 조선인 감시원은 전쟁이 끝난 뒤엔 연합군의 분풀이를 위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 진짜 고통스러운 것은 “조국은 해방되어 다들 기뻐하는데 나는 왜 일본인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을 받아야 하느냐”는 소외감이었다. 일제의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건만 자신들은 가해자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억울함이었다.

하지만 처형대에 서야 했던 춘길의 친구 남성(정나진)의 뼈아픈 토로처럼 “포로감시원이 되지 않는 길, 포로를 때리지 않는 길, 독립운동가가 되는 길”을 택하지 못한 죄책감도 그들을 짓눌렀다. 그런 죄의식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불러온다. 동경유학생 출신의 남성이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는 건 그냥 여자의 푸념밖에 안 되지”라는 ‘맥베스’의 대사를 읊다가 자신이 가해자였음을 인정하고 사형대로 당당히 걸어가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파멸적 운명을 택했던 맥베스와 죄의식조차 없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조선인 포로감시원을 병치시킨 것은 어색했다.

그보다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던 그들의 회색빛 영혼을 좀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들이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민족의 기억에서 망각돼야 했을까. 그들이야말로 ‘친일=가해자’ ‘반일=피해자’의 이분법적 도식을 내부로부터 균열시키는 쐐기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은 또한 부일협력자에 대한 새로운 기준으로 ‘반(反)인도주의’를 내세우는 것마저 불편하게 만드는, 가시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2만∼5만 원. 14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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