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하나뿐인 여의주를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시즌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는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판도 얘기다.
상금 랭킹을 보면 신지애(22·미래에셋), 청야니(21·대만), 미야자토 아이(25·일본), 최나연(23·SK텔레콤)이 근소한 차이로 1∼4위에 올랐다. 선두 신지애(146만3833달러)는 최나연(137만2371달러)을 9만1462달러 앞섰을 뿐이다. 앞으로 남은 대회는 7개. 이 가운데 이달 중순부터 말레이시아(사임다비대회), 한국(하나은행챔피언십), 일본(미즈노클래식)에서 3주 연속 아시아 시리즈를 치른다. 아시아 홈 팬 앞에서 골프 여제의 윤곽이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올 한 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들 네 명 중 기선 제압은 미야자토가 했다. 미야자토는 2월 혼다 PTT LPGA 타일랜드와 HSBC챔피언스를 2주 연속 우승하며 시즌을 힘차게 열었다. 은퇴한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의 뒤를 이을 강력한 후보로 주목받았다. 그 후 미야자토는 시즌 5승으로 다승왕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갔다.
청야니는 유독 큰 무대에 강한 체질을 과시했다. 4월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8월 리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2개의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메이저 통산 3승째를 거둔 청야니는 9월 P&G NW 아칸소챔피언십에서 시즌 3승째를 거뒀다.
지난해 신인왕과 상금왕을 동시 석권한 신지애는 슬로 페이스였다. 시즌 초반 클럽 적응에 애를 먹고 급성맹장염과 편도선염에 시달리는 등 컨디션 난조에 허덕였다. 그래도 꾸준히 톱10에 진입하다 7월 ‘제5의 메이저’라는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는 그동안 한국 선수의 우승이 없어 ‘알프스 징크스’란 말까지 나왔으나 신지애가 코리아 군단의 간판답게 무관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시즌 2승을 올리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최나연도 7월 제이미 파 오언스 코닝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2년 연속 위너스클럽에 가입했다. 쇼트게임과 퍼트 능력이 향상된 최나연은 이 대회를 시작으로 5개 대회 연속 3위 이내의 상승세를 몰아갔다.
이들 네 명은 아시아 특유의 조기 교육 열풍에 성실성이 곁들여지면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신지애와 최나연은 초등학교 때 골프를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클럽을 잡았다. 주니어 시절 이름을 날리다 프로대회에서 언니들을 꺾으며 각광을 받았다. 고교 2학년의 어린 나이로 SK인비테이셔널에서 트로피를 차지한 신지애는 국내 최강을 거쳐 2008년 LPGA투어 비회원으로 3승이나 거뒀다.
미야자토는 4세 때 골프를 시작해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한 대표 경력을 쌓았다. 2005년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는 2위를 역대 최다인 12타 차로 따돌리며 수석으로 통과했다. 3년 넘게 미국 무대에서 우승이 없던 그는 오랜 부진의 세월을 극복하고 부활했다. 5세 때 골프에 입문한 청야니 역시 미국 유학을 통해 실력을 키운 뒤 대만 대표로 활약했다. 호쾌한 장타는 청야니의 주무기.
주니어 시절 자주 맞붙었던 것도 실력을 키운 비결이었다. 신지애와 최나연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서로의 존재가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최나연과 청야니는 아마추어에 이어 2008년 나란히 LPGA투어에 데뷔해 팽팽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청야니는 최나연의 숙소를 찾아 된장찌개, 삼겹살 같은 한국 음식을 자주 얻어먹을 만큼 가깝게 지낸다.
종착역을 향하면서 저마다 각오는 뜨거워진다. 한때 새가슴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최나연은 어느새 강심장으로 변해 골프 여왕을 노리고 있다. 최나연은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니다. 결승점을 향해 전력을 다해야 될 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 유일의 LPGA투어 대회인 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2년 연속 우승한다면 이런 야망은 더욱 가까워진다.
신지애는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다. “무리하게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 1위 자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기에 부담보다는 성장을 향한 에너지로 삼겠다. 내년 시즌 더 강한 선수가 되는 게 중요하다.” 남은 시즌 선택과 집중을 통해 확실한 결말을 노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과연 승천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팬들의 관심은 계절이 바뀌어도 더욱 뜨거워진 필드에 쏠리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