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 ‘복어’(문학동네)에 대해 조경란 씨(41·사진)는 각별한 애정을 밝혔다. 오래 두고 다듬어온 이야기라는 의미다. “슬픔과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죽음이라는, 내가 압도당한 것에 대해서 썼다”는 작가의 설명은 얼핏 모호하게 들리지만, 여기에 “나를 사로잡은 것과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라는 덧붙임을 들으면 이해할 만하다. 슬픔, 아름다움, 두려움, 죽음. 예술가에게 이것들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작가 자신이 “내가 어디까지 부딪치며 쓸 수 있는지 보고 싶다”며 장편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터다. 다섯 번째 장편 ‘복어’는 제목부터 ‘독기’를 드러낸다.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되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는 생선이다. 작품에서 ‘복어’는 직접적인 죽음의 도구이자 죽음의 상징이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의 사연이 장(章)을 교차해서 전개된다. 조각가인 여자는 복어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복어 요리를 배우는 데 열중한다. 그의 할머니는 독이 든 복어국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으로 스스로 세상과의 인연을 끝냈다. 죽음의 섬뜩한 기운은 손녀에게 내림했고, 여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끌림의 감정을 오가면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건축가 남자에게도 죽음의 상처가 있다. 자살한 형 때문이다. 소설은 이 두 사람이 홀로 지내던 삶을 상대방의 삶과 섞으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뜨거운 사랑의 감정으로 치닫게 하는 대신 작가는 두 남녀가 상대방으로 인해 자기만의 마음의 방에서 나오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린다.
“생각하고 읽고 쓸 수 있다는, 단순한 삶이 얼마나 원대한 꿈인가를 이 소설을 쓰면서 알아차려 버렸다”는 작가의 고백은 이 작품을 ‘예술가소설’로 읽어내는 데 하나의 단초를 준다. ‘생각하고 보고 만들어내는’, 단순해 보이는 조각가 여성과 건축가 남성의 삶은 실은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의 무늬들로 이어져 있다. 하나의 창작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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