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행주나루의 역사, 100년 넘은 성당의 종소리는 아는지 모르는지…

  • Array
  • 입력 2010년 10월 8일 03시 00분


행주산성의 재발견… 사람-문물 넘쳐나던 한강의 길목… 1978년 행주대교 개통과 함께 쇠락
나루는 사라졌지만 빼어난 풍광 그대로… 장어-참게 등 식도락 나들이 재미 쏠쏠

행주나루가 있던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소애촌의 돌방구지 앞 한강에서 행주어촌계 어민이 참게잡이용 통발을 내리고 있다. 경기도에 속한 한강변은 강 건너 서울과 달리 아직도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 이렇게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행주나루가 있던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소애촌의 돌방구지 앞 한강에서 행주어촌계 어민이 참게잡이용 통발을 내리고 있다. 경기도에 속한 한강변은 강 건너 서울과 달리 아직도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 이렇게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 소애촌 식당가 터줏대감 ‘행주가든’ 박성자 씨


행주산성을 찾았다면 한강이 내다뵈는 강변식당에서 장어구이 한번 맛보는 식도락은 참새방앗간 아닐까. 그곳은 행주산성 아래 행주외동, 그러니까 행주대교 북단 강변에 들어선 ‘소애촌’ 식당가다. ‘샛말’이라고 불리는 이곳 장어식당촌 역사는 벌써 60년을 훌쩍 넘겼다. 초창기만 해도 이곳에선 행주나루 어부가 직접 잡은 장어를 취급했다. 하지만 수질 악화와 수중보 설치로 서해 장어가 이곳까지 오르지 못한 지난 30년 새 사정은 변했다. 장어는 크게 줄어 외지 장어를 쓴다. 그래도 식당은 계속 늘어 20곳이 넘는다.

소애촌 식당가에도 터줏대감이 있다. 60여 년 역사 행주가든의 여주인 박성자 씨(79·사진)다. 애초 식당은 행주나루 돌방구지(큰 돌이 이룬 절벽 아래 지형) 물가의 수상가옥이었다. 박 씨는 드럼통을 엮어 만든 바지선 위에서 밥 짓고 음식을 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나룻배를 저어 강 건너 개화산 밑 공암과 행주, 두 나루를 오가며 16년간 뱃사공(1963∼78년)을 했다. 행주가든을 지은 것은 당시 이 자리에 있던 식당 ‘서일루’가 홍수에 떠내려간 직후. 행주가든 터는 돌방구지 강안을 흙으로 돋워 닦아 만든 자리로 강안의 전망이 무척 좋다.

79세 고령에도 고운 피부에 건강이 좋아 보이는 박 씨. “장어 많이 드셔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그 대답에 가슴이 찡해왔다. “대장간에 칼이 논다고 평생 장어 장사 했지만 나 먹으려고 구운 건 한 마리도 없어.”

식당은 강안이 훤히 내다뵈는 유리창이 한 벽을 이루고 있다. 그 창밖으로 한강 물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강에서는 행주어촌계 어민들이 1t도 안 되는 작은 동력선에서 참게통발을 던지고 있었다. 강 건너 올림픽대로로는 자동차가 질주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류 쪽 풍치는 행주대교에 가로막혀 영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류 쪽은 강이 훤히 내다보였다. 홍수 때 물이 불면 식당 창밖으로 강물의 넘실거림까지 보인단다. 박 씨는 행주외동에서 태어난 토박이. 행주성당의 5대 박우철 바오로 신부(1926∼1935년 재임)가 큰아버지로, 부모는 부임하던 박 신부를 따라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 서해 물길과 한강 수운의 연결점 행주나루

행주나루와 산성은 그 역사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그런 오랜 역사의 초점은 역시 한강이란 큰 강이다. 주변 평야가 훤히 조망되는 덕양산은 강 건너 마주한 개화산과 더불어 강을 통해 진입하는 적을 방비하기에 그만이다. 그리고 한강은 반도의 중심으로 진출하기 위한 유일한 물길이었고 또 서울지역 주민의 생명수였다.

산성은 마을을 낳고 마을은 사람을 불러들이며 그 사람이 길을 트고 그 길로는 문물이 오갔다. 행주나루는 바로 그 한강의 길목이다. 여기서 뱃사공을 했던 행주가든 박성자 씨의 말을 들어보자. “강 건너편에서 ‘사공’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노를 저어 건너가 나룻배로 강을 건네줬어. 그때만 해도 강폭이 지금 절반 정도여서 부르면 다 들렸거든. 뱃삯? 군청서는 5원만 받으라고 했는데 배짓느라 진 빚 갚느라 곱절로 받았지. 가끔 뱃놀이 오면 산성 아래 절벽까지 갔다 오곤 했지. 배타는 손님 중엔 부평장 일산장을 옮겨 다니는 장꾼도 많았고 강 건너 친정 다녀가던 새댁도 생각나는구먼. 소도 많이 태웠어. 부평장에서 사가지고 파주까지 몰고 가던 농민들이었지.”

행주산성 아래 소애촌 식당가 언덕 위에 자리잡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 겸 샌드위치 하우스 올드스쿨.
행주산성 아래 소애촌 식당가 언덕 위에 자리잡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 겸 샌드위치 하우스 올드스쿨.
나루나 포구는 지금으로 치면 버스터미널 격. 배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운송의 주역이었던 시절이었으니 그 배가 닿는 곳이라면 사람과 물건, 돈이 흥청거릴 수밖에. 행주나루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허다한 한강의 포구와 나루에서도 아주 특별했다. 서해로 수송된 전국의 세곡과 세금, 생선과 물자를 도성으로 실어 나를 때 반드시 들르던 중간보급기지이자 국제교역항이었기 때문. 그래서 행주는 ‘포’보다 규모가 작은 ‘나루’여도 배후 마을이 컸고 나루에는 중앙관청까지 나와 있었다. ‘관청너머’라는 식당 이름은 바로 그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식당은 소애촌 식당가의 뒤편 언덕 너머 자유로 방향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옛 한옥건물의 토속식당. 집주인 이송희 씨(74)는 “관청이 저 (언덕) 너머 있어서 옛날부터 식당이 든 이곳을 관청 너머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그런 행주나루 역사가 명을 다한 것은 1978년. 행주대교 개통과 동시에 나룻배와 함께 사라졌다. 나루의 정확한 위치는 행주대교 북단교각에서 상류 쪽으로 400m쯤 떨어진 행주가든 식당 아래 강변의 돌방구지. 당시 나루는 백사장이었는데 지금은 수중보 설치로 인한 수면 상승과 개흙 축적으로 사라졌다. 행주가든 주차장 입구의 ‘행주나루터’ 표석만이 여기 나루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행주산성 앞 한강에는 아직도 고기잡이 어부가 있다. 행주어촌계 42명 중 33명이 여기서 매일 그물과 통발을 던진다. 요즘은 참게잡이가 한창. 철마다 웅어와 황복, 장어도 잡지만 그 양은 미미한 편이다. “지난달 호우 때 장어그물과 참게통발이 몽땅 떠내려가 어민들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경인 아라뱃길 낸다고 준설하느라 고기잡이도 어려워지고….” 어촌계 총무 최재후 씨의 한숨 섞인 말이다. 자연산 장어도 잡히는데 소매가는 한 마리(700∼800g)에 15만 원 안팎이라고.

○ 101년 역사의 행주성당

올해로 101년을 맞은 의정부교구 행주성당(주임 홍승권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고색창연한 성전. 명동성당 약현성당에 이어 1909년 서울 외곽에 처음으로 세운 성당이다.
올해로 101년을 맞은 의정부교구 행주성당(주임 홍승권 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고색창연한 성전. 명동성당 약현성당에 이어 1909년 서울 외곽에 처음으로 세운 성당이다.
행주나루, 행주산성과 더불어 이곳 행주의 역사를 간직한 곳은 올해로 설립 101주년을 맞은 행주성당(의정부교구). 행주외동의 언덕 중턱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았는데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에서 명동, 약현성당(서울)에 이어 오래기로 세 번째다. 1909년 서울대교구가 경성(서울) 밖 첫 성당을 하필 이곳에 지은 이유를 추적하다 보면 자연스레 당시 행주나루가 얼마나 번성했고 사람 왕래가 많았는지를 알게 된다.

이 성당은 찾는 것만으로도 한국 천주교의 지난 100년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성당은 겉으로만 보면 여염집과 다름없다. 양기와 지붕에 붉은 벽돌의 키 낮은 평범한 한옥이어서다. 그 옆에 선 낡고 녹슨 철제종탑, 그 아래 성모동산에 서있는 성모마리아상, 그리고 마당의 나무십자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곳이 성당임을 눈치채게 된다.

외관으로는 101년 역사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성전에 들어서면 확연히 다가온다. 1960년대 고친 겉모습과 달리 성전의 실내는 거의 101년 전 모습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교실 절반 크기의 자그만 성전. 바닥은 마루고 거기엔 등받이 없는 나무걸상이 줄맞춰 놓여 있다. 그 위에 단정하게 놓인 방석이 인상적이다. 작은 실내는 천장을 떠받치느라 곳곳에 줄지어 세운 나무기둥으로 더더욱 좁아 뵌다. 정면의 제단이 가릴 정도다.

방문객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천장이다. 다듬지 않은 소나무로 놓은 들보에 서까래를 얹은 전통가옥의 지붕 구조가 훤히 보인다. 그 대들보엔 ‘융희4년 음력3월8일’이라고 쓴 상량문이 아직도 희미한 글씨로 남아있다. 수요일 오전 10시 반. 관청너머 식당 주인 이 씨가 종탑의 줄을 풀어 11시 미사를 알리는 종을 울렸다. 뎅그렁 뎅그렁. 성당 종소리가 유유히 흐르는 한강 강안의 행주외동 언덕 아래로 퍼져나갔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이날 미사에 참례한 신자는 20여 명. 전체 신자는 250명인데 그중엔 여기서 세례 받고 평생 행주성당을 뜨지 않고 여기서 신앙생활을 해온 80대 토박이도 많다고 한다.

미사 후 홍승권 대건안드레아 주임신부를 만났다. 홍 신부는 1909년 이 성당에 첫 신부가 부임한 이래 21번째 신부. 50년간 신부가 없어 공소로 있던 이곳에 2004년 부임한 뒤 줄곧 여기서 사목하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다른 본당에 안 보내줄 것 같아요. 이 일 다 끝마칠 때까지는요.” ‘이 일’이란 ‘행주성당 원형 보존 및 100주년 기념사업’을 말한다. “1909년 당시 서울과 주변에는 성당이라고는 문(서울 사대문) 안의 명동성당, 문 밖의 약현성당(중구 중림동)뿐이었어요. 행주성당은 서울 외곽에 들어선 첫 성당이지요. 여기 성당을 세운 것은 박해받던 신자들이 박해가 끝난 후 행주나루를 중심으로 한 경기 서북부에 많이 모여 살아서였습니다. 기념관이 완공되면 당시부터 이후 100년 행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전시할 겁니다. 성당도 100년 전 모습 그대로 복원하고요.”

현재 행주성당의 외관은 6·25전쟁 때 포탄 파편으로 쓰러진 것을 고친 1960년대 것. 홍 신부는 탁상용 캘린더 형태로 만든 홍보자료 ‘경기 서·북부 신앙의 요람-행주성당 100년 1909∼2009’에 담긴 1950년대 촬영된 사진을 가리키며 그대로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행주성당은 이미 문화재로 등록된 역사적인 건축물. 지난해부터 100주년 기념관 기금 모금, 설계 등 준비작업이 진행돼 왔고 현재는 터파기에 앞서 옹벽공사를 마친 상태다.

기념사업에 들 비용은 줄잡아 25억 원. 홍 신부는 그동안 전국 성당을 찾아다니며 기념사업을 홍보해 신자들로부터 10억 원의 후원을 얻어냈다. 그래도 15억 원이 부족한 상태.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뜻을 모아야지요.” 그렇잖아도 흰머리가 더 하얗게 세어버린 홍 신부. 그렇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 서두름은 없었다. 뜻이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길은 있게 마련이니까.

글 사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행주대첩기념관서 역사 현장학습… 9일까지 열리는 행주문화제는 ‘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기록된 행주대첩의 현장. 1593년 3월 권율 장군과 2300명의 관군 및 승병, 그리고 치마에 돌을 담아 나르던 아녀자 등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아홉 차례나 공격한 왜군 3만 명을 신기전 총통 화차 등 화약을 사용한 신무기로 완벽하게 무찔렀던 곳이다. 이런 역사는 1970년대 성역화사업을 통해 잘 보존돼 있어 어린이의 현장학습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영상교육관에서는 대첩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물도 상영한다. 산성에는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석상과 영정을 모신 사당도 있고 당시 토성도 복원됐다. 대첩기념관에는 당시 사용했던 신기전 등 무기를 전시. 잔디광장과 정자(덕양정 진강정)가 있고 북한산과 한강 조망 망원경(무료)도 설치돼 있다.

이번 주말에는 행주산성과 고양시 일원(고양어울림누리, 화정역 로데오거리)에서 제23회 고양 행주문화제(7∼9일·www.hjfestival.or.kr)가 열린다. ‘행주산성 한바퀴’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됐다. 2010 고양호수예술축제도 7일 개막해 10일까지 호수공원과 주변에서 열린다. 주로 거리극과 무용 마임 연극이 공연되는데 5개국 10개 해외단체와 국내 80단체가 참가한다. 031-909-9000

○ 여행정보

◇찾아가기 행주산성 △손수 운전: 자유로∼행신나들목∼행신고가 오른편 차선∼사거리(우회전)∼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삼거리(우회전)∼행주산성 △대중교통 ①산성 주차장: 화정역(지하철 3호선)에서 011, 012(마을버스·운행간격 40분) 85-1(초록버스·운행간격 30분) ②행주내동: 산성까지 걸어서 10분. 1082(광역버스) 921 108 870 873(파란버스) ▽소애촌 식당가(행주외동) △대중교통: 화정역에서 011(마을버스), 85-1(초록버스) △도보: 행주산성에서 나루터 방향 10분. ▽행주성당 △주소: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194 △전화: 031-974-1728 △홈페이지: 다음 카페(행주천주교회) △주일 미사: 오전 10시 30분 △찾아가기: 산성 아래 소애촌 식당가 입구에서 좌회전, 자유로 쪽으로 200m 가서 오른쪽 ‘행주산성로 120번지 길’로 다시 200m 언덕 중턱. 주차 가능하지만 기념관 공사로 혼잡. △기념사업 후원: 1계좌 10만 원. 매달 한 번씩 후원자를 위한 미사봉헌과 기념관 내 ‘은인의방’에 이름 새기고 영구히 기도.

◇행주산성 주변 맛집소애촌 식당가 △행주가든: 행주나루터에 자리 잡은 오랜 역사의 식당. 장어구이 송어회 메기매운탕 등을 낸다.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212, 031-974-7461 △포석정: 소애촌 식당가 초입의 토박이식당. 장어구이, 매운탕(바가사리), 사철탕을 내며 단체손님 위한 버스도 운행. 행주외동 198-7, 031-974-7458 △온트리(On tree): 한강을 내려다보며 커피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 행주가든 앞. 031-974-1069 △관청너머: 토박이 최정자 씨(73)가 며느리 오정화 씨와 함께 한옥에서 음식을 내는 22년 역사의 토속식당. 우거지볶음과 토종닭볶음, 직접 쑨 도토리묵이 유명한데 단골들이 주로 찾는다. 행주외동 263, 031-974-6713 ▽언덕 위 △올드스쿨: 언덕의 숲 너머로 한강이 내려다뵈는 전망 좋은 카페, 샌드위치 하우스. www.oldschool.kr 행주외동 177-16, 031-973-1263 ▽행주내동=자유로 북로 나들목 부근의 산성 아래 식당가 △행주산성 원조국수집: 주말이면 손님이 줄을 서는 국수식당.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만 내는데 모두 3000원. 한강을 달려온 자전거 운동객이 즐겨 찾는 곳. 자유로 서울방향 진입램프 입구 길가. 월요일 쉼. 행주내동 138-3, 031-974-7228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