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럭셔리 플라워 전문 장식회사인 ‘히비야카단’의 수석 플로리스트인 우쓰미 가쓰노리 씨가 분홍색과 빨간색 꽃을 검은 꽃병에 담은 감각적인 웨딩 꽃 장식을 선보이고 있다.
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얕보는 사람이 있다면 우쓰미 가쓰노리(46·內海 一法) 씨가 꾸민 다섯 개의 방(봄, 여름, 가을, 겨울, 하모니)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랑, 우정, 청춘, 추억…. 인생의 아름다운 가치들이 그가 꽃으로 치장한 공간 곳곳에서 새록새록 얼굴을 내밀었다. 꽃은 위대했다.
우쓰미 씨는 일본의 럭셔리 플라워 전문 장식회사 ‘히비야카단(日比谷花壇)’의 수석 플로리스트다. 1872년 도쿄에서 설립돼 138년의 역사를 지닌 히비야카단은 1800여 명의 직원이 일하는 대형 ‘꽃 회사’다. 꽃뿐 아니라 꽃을 활용한 각종 테이블 장식도 한다. 연 매출은 207억 엔(약 2800억 원·지난해 기준). 일본 왕실도 이 회사에 꽃 장식을 맡긴다.
그가 꾸민 다섯 개의 방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내 연회장이었다. 지난달부터 이 호텔의 웨딩 꽃 장식을 맡게 된 그는 최근 방한해 화려한 꽃의 향연을 선보였다. 사계절의 특색에 따라 달리 꾸민 네 개의 방, ‘하모니’란 이름의 다섯 번째 방이었다. 이 방들을 본 사람들은 ‘아, 결혼하고 싶다’고 탄복했다. 기혼자들도 ‘리마인드 웨딩’(부부가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다시 올리는 결혼식)을 꿈꿨다.
일본 왕실과 명문가의 웨딩 꽃 장식에 참여하는 우쓰미 씨는 “대개는 하객이 100명을 넘지 않는 일본의 결혼식은 신랑 신부만큼이나 하객을 배려한다”며 “히비야카단 스타일은 신뢰, 안심, 세련된 품격을 모토로 하객 테이블 장식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우쓰미 씨에 따르면 요즘 일본의 최상류층은 꽃 장식에 있어 심플한 소재와 더불어 수국과 호접란 등의 우아한 조화를 선호한다. 하객 60명을 기준으로 꽃 장식에만 사용되는 비용은 30만 엔(약 400만 원). 특히 왕실은 계절감을 중시해 도자기 식기에 어울리는 해당 계절의 꽃을 많이 쓴다고 한다.
그의 손길을 거친 웨딩 공간들을 소개한다. 굳이 결혼식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인테리어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꽃의 미학’이 꽤 있다.
○ 봄… 싱그러운 가든파티
‘해피트리’라는 관상나무를 활용해 웨딩 단상(사진)을 꾸몄다. 봄 웨딩 장식의 콘셉트는 녹색 식물원. 신랑 신부가 밟는 런웨이는 흰색 천 대신 초록색 잔디를 깔아 싱그러운 가든 같았다. 우쓰미 씨는 “한국의 대표적 봄꽃은 개나리라고 들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가을이라 대신 노란빛의 메리골드로 장식했다”고 말했다. 천장은 초록색 물결무늬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연출했다. 하객 테이블 중앙에 초록색 이끼와 야생화를 장식하고, 흰색 테이블보는 연두색 리본으로 묶어 접시 위에 놓았다. ○ 여름… 시원한 바다 느낌
여름은 바닷가를 테마로 했다. 주례자가 설 벽면엔 흰 천 가림막으로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냈다. 주례대는 투명 유리 진열대로 만든 뒤 각각의 진열 칸에 소라와 바다 동물들의 모형을 뒀다. 하객 테이블보는 밝은 베이지색으로 하고, 의자는 한국의 모시로 리본 장식을 했다. 테이블 위 소라 모양의 그릇에는 떡을 담았다. 꽃 장식은 오렌지색 모카라, 신비지움, 그린 안시리움 등을 활용했다. ○ 가을… 낙엽길의 정취 물씬
맨드라미, 달리아, 낙엽을 이용해 가을의 고혹적인 정취를 담았다. 솔방울과 작은 고추도 테이블 장식 소품으로 활용했다. 붉은빛이 도는 적말채로 테이블 위 양초를 감쌌더니, 갈색과 금색으로 장식된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식기와 잘 어우러졌다(사진). 우쓰미 씨는 “10년 전 미국 할리우드 영화 ‘뉴욕의 가을’에서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가 함께 걷던 낙엽 길을 떠올리며 꾸몄다”고 말했다. 하긴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 겨울… 순백의 세상 속으로
우쓰미 씨가 꾸민 겨울 방에 들어섰을 때 고 앙드레 김 패션 디자이너가 환생한 건 아닌가 잠시 착각이 들었다. 순백색 세상…. 뭐니 뭐니해도 흰색은 성스러운 색이다. 테이블 장식(사진)은 철쭉 가지에 흰색 칠을 해서 가지마다 양초를 달았다. 헤드 테이블은 철쭉과 아마릴리스로 장식해 우아한 통일감을 줬다. 겨울 웨딩 테이블엔 흰색과 빨간색 장식이 있는 ‘에르메스’ 식기를 곁들여 파티 분위기를 강조했다.
○ 하모니… 품격과 화려함 절정
우쓰미 씨가 가장 흡족해한 웅장한 규모의 ‘하모니’ 볼룸 장식(사진). 160가지의 꽃병에 다양한 꽃을 한껏 화려하게 디자인했다.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이 컨템퍼러리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강렬하고 세련된 느낌을 만들고 싶었단다. 일반적으로 결혼식에 사용되는 흰색 꽃 대신 꽃분홍색 수국과 빨간색 장미를 검은색 꽃병에 담아 모던한 분위기를 냈다.
그의 꽃 장식을 보고 다짐했다. 검은색 꽃병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민얼굴에 걸쳐도 세련미를 더하는 검은색 뿔테 안경처럼 검은색 꽃병에는 어떤 꽃을 꽂아도 그 꽃을 진귀하게 빛내는 매력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건 바로 꽃과 꽃병의 ‘하모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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