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가 돈 쓰는 법에 관해 책을 썼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그린비)다. 저자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이자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씨.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수유너머에서 만난 고 씨는 “한국사회의 돈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획일적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고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사회의식이 투철하다고 하는 분들도 자기 자신이 돈을 쓰는 방식은 아파트 평수 늘리고 차 사고 상품을 구매하는 것뿐이더라고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나는 돈이 없다’ 이 두 가지 생각뿐,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이 없어요.”
지금까지 사랑과 연애를 하는 법(‘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공부를 하는 법(‘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 관한 책을 썼지만 돈에 대한 책은 특히 더 어려웠다고 했다. 고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에 대한 얘기를 성(性)에 관한 얘기보다 더 쉬쉬한다. 실은 돈에 대한 욕망이 들끓으면서도 아닌 척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 지원을 받지 않으며 자급자족하는 연구공동체를 꾸려온 고 씨이기에 실제 경험이 풍부하게 녹아들어간 책을 쓸 수 있었다. 책 속에는 연구소에서 강좌를 듣거나 토론 조사 활동 등에 참가하는 10∼30대들의 경험과 인터뷰 내용, 고 씨가 주변에서 직접 본 사례들을 담았다.
“여기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친구가 자기 또래를 인터뷰했어요. ‘100만 원 생기면 뭐 할거냐’는 질문에 ‘명품 매장으로 달려가겠다’는 답이 나오더라는 거예요.”
친구들과 함께 쇼핑몰을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것 외에는 관계 맺을 줄 모르는 10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도 쓸 곳을 몰라 쇼핑중독에 빠지는 20대, 노후 대책 때문에 현재를 전전긍긍하며 사는 40, 50대…. 자립하지 못하고 대출을 받거나 카드로 무이자할부를 받으며 빚을 지는 것이 일상이 된 현대 한국의 모습이다.
이렇게 돈에 예속된 삶을 사는 모습은 고 씨가 ‘돈의 달인’이라고 부르는 이들과 대비된다. 길 위에 살며 공동체 안에서 삶을 꾸린 임꺽정의 모습이나 가난하면서도 제비를 치료해 주며 나눌 줄 알았던 흥부, 소액대출운동을 주창한 무하마드 유누스, 인도 철학자 비노바 바베 등이 고 씨가 말하는 돈의 달인들이다.
고 씨는 “돈의 달인들처럼 돈을 쓰면 돈이 물처럼 순환하고, 곧 관계가 형성되고 사람이 모인다”고 했다. 책 제목이 ‘호모 코뮤니타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코뮤니타스는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19세기 사회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를 뜻하는 소키에타스에 대항해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라는 뜻으로 만들어낸 단어다. 진정한 돈의 달인은 돈에 먹히지 않고 돈을 활용해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인 셈이다.
“우리 조상들은 돈 쓰는 법에 따라 사람 운명이 갈린다고 생각했어요. 돈은 그만큼 인간에게 중요하죠. 세상을 바꾸려 나서거나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전에, 지금 이 자본의 한가운데서 내 삶의 자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돈의 지혜를 모든 사람이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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