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도는 고즈넉한 마을, 어미 돼지의 젖을 빨고 있는 새끼 돼지들, 호수 옆에 자리한 평화로운 숲. 흔히 식당과 이발소에 걸려 있어 ‘이발소 그림’으로 불리는 ‘삼각지 미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풍경이다. 1960년대부터 70년대를 거쳐 미군 용산기지와 가까운 서울 삼각지에서 대중이 좋아할 만한 비슷한 형식의 작품이 주문 생산되면서 ‘변방의 장식물’로 인기를 얻었으나 이제는 쉽게 만나기도 힘든 그림이다.
최근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전시공간 ‘오래된 집’에서는 가볍고 싸구려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그림의 미적 가치와 의미를 찾아보는 ‘삼각지 미술 예찬’전이 열려 눈길을 끈다. 삼각지에서 제작한 그림을 전시하는 것은 아니고 한국적 소재와 이미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화가 민정기 류해윤 최석운 황지윤 이준복 씨의 작품을 통해 서민에게 편안하게 다가섰던 삼각지 미술을 되돌아보는 전시다.
전시는 삼각지 미술의 처지와 비슷하게 장차 사라질 환경에 놓인 낡은 집과 현대적 그림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개발로 인해 폐가 직전의 상태에 놓인 한옥도 양옥도 아닌 두 채의 집. 비좁은 방에 걸린 작품은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국인의 기억에 각인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환기시킨다.
전시기획자 황하연 씨는 “삼각지 미술이라고 하면 유치하고 촌스럽다는 부정적 의미로 평가됐지만 지난 시대의 정서를 돌아보게 하는 사회성을 지닌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전시를 통해 삼각지 미술을 되돌아보고 향수 어린 풍경의 흔적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발소 그림을 본 적 있는 연배의 관객에겐 향수를, 젊은층엔 색다른 문화체험을 선사하는 전시지만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02-766-7660(사단법인 국제시각예술교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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