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joy]동아일보 주최 ‘투르 드 DMZ 국제사이클’ D-7… 환상의 코스 미리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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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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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동서로 달리지만… 남북으로 질주할날 머지 않기를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은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어야 하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박봉우의 ‘휴전선’에서>

휴전선 155마일(249.4㎞)은 ‘쇠 허리띠’이다. 한반도 허리를 옥죈다. 묵직한 압박감에 늘 답답하다.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남북의 젊은이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우스꽝스럽다. 답답하고 화가 난다. 정녕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다른 길은 없는 것인가. 단 하루라도 이 망할 놈의 쇠 띠를 내팽겨 쳐 버릴 수는 없는가?

내로라하는 세계적 사이클 선수들이 DMZ(Demilitarized Zone)일대 476㎞에서 자전거축제를 벌인다. 10월22일부터 24일까지 펼쳐지는 ‘투르 드 DMZ 서울 국제사이클대회’가 그것이다. 동아일보 서울시 육군 강원도 경기도 대한사이클연맹 주최.


사이클은 강원고성통일전망대를 출발해 을지전망대→펀치볼 →도솔산 →파로호→ 평화의 댐→철원평야→노동당사→통일대교를 지난다. 양구 피의 능선(Bloody Ridge), 양구와 인제 사이의 단장능선(Heartbreak Ridge), 오성산과 김화 사이의 저격능선(Sniper Ridge), 철원 평강 김화의 철의 삼각지, 철원북서쪽에 있는 백마고지 등 6.25전쟁 격전지를 달린다.

자전거는 평화다. 해방이고 자유다. 아이들은 왜 자전거를 좋아할까? 그것은 규칙도 필요 없고, 어른들의 간섭도 없이 맘껏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초로 가져보는 바퀴달린 물건인 것이다. 바퀴는 곧 자유다. 동그라미 두개에 몸을 싣고 맘껏 자유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

‘한반도/가로지른/155마일에/소름이 돋는다//살/찢고/피도 뿌리는/쇠가시가/돋는다//이제/곧 밝은/새벽이다/소름이 돋는다’ <전봉건의 ‘6.25-7’에서>

강원고성통일전망대(70m) 앞은 북한 금강산해금강이다. 쪽빛 색유리가 하늘과 바다로 나뉘어 접혀있다. 돌을 바다에 던지면 쨍그랑 소리 내며 깨질 듯 하다. 돌을 하늘에 던져도 와장창 부서질 것 같다.

북한레이더기지(국지봉)가 손앞에 있다. 금강산 가는 육로길이 적막하다. 하얀 모래밭이 철조망에 갇혀있다. 파도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통일미륵불과 성모마리아상이 북녘 땅 금강산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저 멀리 금강산 마지막봉우리인 구선봉이 눈에 걸린다. 일출봉 육선봉 채하봉 십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 남북해안 한 가운데엔 손바닥만한 꼬막섬(송도)이 웅크리고 있다.

도로사이클선수들은 늘 대형트럭 등 오가는 차량들과 전쟁을 벌인다. 한순간 아차하면 차에 치인다. 투르 드 DMZ에선 그런 걱정이 필요 없다. 길은 늘 한적하다. 어쩌다 군용차량이 한두 대 지날 뿐이다. 하얀 억새밭이 출렁인다.

흠이라면 아스팔트길이 가끔 패인 곳이 있다는 것. 자전거가 넘어질 수 있다. 사이클선수들은 늘 말끔하게 면도를 한다. 털을 깨끗이 없애놓아야 넘어져 살에 돌이 박혀도 상처를 소독할 수 있다. 반창고를 붙이기가 쉽다. DMZ는 길을 벗어나면 미확인 지뢰지대이다. 위험하다.


투르 드 프랑스는 3685㎞를 주파하는 사이클 경주이다. 200명의 세계적인 선수들이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3주 동안 프랑스 전체를 일주한다. 길가에서 열광하는 관중들은 줄잡아 1500만 명이나 된다.

투르 드 DMZ는 민통산 안팎에서 사는 군인과 주민들이 관중이다. 주민들은 실향민이 많다. 고성 인제 원통 양구 화천 철원 파주 문산 사람들이 통일의 꿈을 실어 보낸다. 오소리 산양 사슴 고라니 멧돼지들도 박수를 보낸다. 언제 우리는 칼과 창을 녹여 삽과 쟁기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안방의 문을/걸어 잠갔다 안에서가 아니고/밖에서 걸어 잠갔다//마루방의 문도/건넌방의 문도 다 그렇게/밖에서 걸어 잠갔다//동이 트는데/부엌문도 대문도 다 그렇게/밖에서 걸어 잠갔다’ <전봉건의 ‘6.25-16’에서>
철원평야에 벌써 철새들이 날아왔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낟알 쪼는 새들이 새까맣다. 사람이 다가가면 후두둑 장막 치는 소리를 내며 하늘로 치솟는다. 끼룩끼룩 생명들의 아우성이 하늘 가득하다. 밭두렁논두렁의 하얀 억새가 눈부시다. 하얀 구절초 꽃이 하늘거린다. 쑥부쟁이 연보라 꽃이 배시시 웃는다.
■ 사이클, 알고보면 더 재밌다

사이클은 복잡하고 고도로 정치적인 스포츠다. 팀 스포츠의 성격이 강하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 7번이나 우승한 랜스 암스트롱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그런 성적을 낼 수가 없다. 팀 동료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사이클에서 한 팀은 보통 8명이다. 1명의 리더를 위해 나머지 7명이 철저히 희생한다. 팀 리더(랜스 암스트롱)는 가파른 언덕을 오를 경우 동료선수 뒤에서 달린다. 그러면 에너지의 30%를 아낄 수 있다. 바람이 심한 날엔 7명의 동료들이 앞에서 바람을 막아준다. 이럴 경우 팀 리더는 에너지를 50%나 아낄 수 있다. 사이클선수는 시속 30∼60km로 달린다. 안장 위에서 물을 마시고, 초콜릿 바를 우걱우걱 씹는다. 하루에 땀을 10∼12리터 흘리고 에너지를 6000칼로리 정도 소모한다. 대소변도 달리면서 해결해야한다.

펠로톤=경주에서 주류선수 무리를 말한다. 이들은 그 무리를 형성하면서 달리지만 몸이 서로 부딪친다. 사이클 손잡이와 팔꿈치 무릎의 충돌이 수시로 일어난다. 펠로톤의 속도는 천천히 수다를 떨면서 시속 30km로 달릴 때도 있고, 도로에 넓게 퍼져 시속 65km로 달릴 때도 있다. 선수들 간엔 끊임없이 협상이 전개된다. ‘오늘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면 내일은 내가 해 줄게“ 하는 식이다.

플리킹=펠로톤에서 한 선수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엿 먹이는 것. 펠로톤에서 양보하고 친구를 만들지 않으면 플리킹 당해 왕따 되기 쉽다.

옐로우 저지=투르 드 프랑스의 각 구간에서 우승자가 입는 노란 조끼. 노란 조끼를 입고 달리는 선수가 이전구간 우승자이다.

폴카 닷 저지=투르 드 프랑스의 산악스테이지에서 정상을 가장 먼저 올라간 선수가 입는 물방울무늬 조끼.

도메스티끄=팀 리더선수의 보조역할을 하는 사이클 선수. 도메스티끄는 ‘하인’이라는 뜻이다. 구간 경주에서 팀 리더를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언덕 같은 곳에서는 폴링(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드롭=한 사이클 선수가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도 앞 선수를 따라갈 수 없는 상태

어택=무리를 지어 가다가 한 선수가 불시에 치고 나가는 것. 마라톤의 스퍼트와 같다.
‘화채그릇’ 모양의 펀치볼(Punch Bowl) 분지. 1951년 6.25전쟁 당시 6번이나 뺏고 빼앗기는 격전끝에 확보한 소중한 땅이다. 여의도 5.3배의 기름진 우묵배미. 1956년 150가구의 개척민들이 불발탄과 지뢰로 뒤덮인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이곳은 원래 12만년 전 선사시대사람들이 무릉도원으로 여겼던 이상향. 첩첩산중에 갑자기 확 펼쳐지는 사발모양의 아늑한 들판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유물들이 쏟아져나오는 이유다. 들판의 노란 벼 이삭들이 떡시루 같다. DMZ=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화채그릇’ 모양의 펀치볼(Punch Bowl) 분지. 1951년 6.25전쟁 당시 6번이나 뺏고 빼앗기는 격전끝에 확보한 소중한 땅이다. 여의도 5.3배의 기름진 우묵배미. 1956년 150가구의 개척민들이 불발탄과 지뢰로 뒤덮인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이곳은 원래 12만년 전 선사시대사람들이 무릉도원으로 여겼던 이상향. 첩첩산중에 갑자기 확 펼쳐지는 사발모양의 아늑한 들판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유물들이 쏟아져나오는 이유다. 들판의 노란 벼 이삭들이 떡시루 같다. DMZ=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사발처럼 우묵한 땅… 쓰린 사연도 한가득▼

펀치볼(Punch Bowl)은 ‘우묵 배미’ 땅이다. 커다란 함지박처럼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다. 펀치(Punch)는 주스 포도주 설탕 등을 섞은 칵테일을 말한다. 보울(Bowl)은 사발이라는 뜻. 즉 펀치볼은 ‘화채그릇’을 의미한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가 꼭 서양의 화채그릇을 닮았다.

6.25전쟁 때 외국종군기자들이 해질 무렵 가칠봉에서 분지를 내려다보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펀치볼전투가 벌어진 1951년 9월, 분지 들판에서는 붉은 노을에 누렇게 익은 벼들이 화채그릇에 담긴 과일처럼 울긋불긋 했던 것이다. 남북길이 11.95km, 동서 6.6km, 면적 44.7km²(약 1354여만 평). 여의도(8.4km²·약 254만평)보다 5.3배나 넓은 기름진 땅이다. 1956년 150가구(965명)의 개척민이 이주해서 불발탄 지뢰밭을 옥토로 일궈냈다. 현재는 550여 가구에 1500명 가까이 살고 있다.

펀치볼 가운데는 화강암이고 바깥쪽은 변성퇴적암이다. 화강암은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으면 잘 부스러진다. 바람에 잘 삭고 빗물에 쉽게 닳는다. 반대로 펀치볼 가장자리의 변성퇴적암은 단단하다. 쉽게 삭거나 부스러지지 않는다. 결국 바깥쪽은 그대로 남고 안쪽 가운데는 삭아 움푹 파이게 된다. 이른바 차별침식이다.

분지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약간 낮다. 서쪽으로부터 가칠봉(1242m) 대우산(1179m) 도솔산(1148m) 대암산(1310m)이 둘러있고 동쪽에는 달산령(807m) 먼멧재(730m)가 있다. 물은 서쪽 높은 산에서 만들어져 동쪽 인제 방면으로 흐른다. 분지 맨 아래 높이는 400∼500m로 주변 산지보다 400∼800m 정도나 낮다.

펀치볼의 우리말 이름은 ‘해안(亥安)분지’이다. 이곳은 원래 지대가 낮아 습기가 높다. 6.25전쟁 땐 8월 중순까지 늦장마가 들어 이 분지가 온통 진흙 밭이 돼버렸다. 보급이 끊기고 병력이동이 힘들었다. 폭격기도 뜨기 어려웠다. 결국 8월 말이 돼서야 공격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40여 일간 6번이나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가칠봉을 우리 손에 넣었다. 이곳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가칠봉(加七峰)의 더할 ‘加(가)’는 ‘이 봉우리가 더해져야 금강산 1만2000봉이 마무리’된다는 의미이다.

습한 곳에는 뱀이 많다.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뱀의 천적인 돼지를 많이 길렀다. 돼지 ‘해(亥)’자와 편안할 ‘안(安)’자가 들어간 까닭이다. ‘돼지 덕분에 편안하게 사는 땅’ 亥安(해안)이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양구군 해안면’이다.

이곳에선 12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구석기시대 유물을 비롯해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의 고인돌 군락, 철기시대의 쇠손칼 등이 쏟아져 나왔다. 어쩌면 이곳은 10여만 년 전부터 인간이 꿈꾼 무릉도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유일한 통로는 동쪽의 당물골 뿐이었다. 그 곳은 펀치볼의 모든 물이 빠져나가는 유일한 골짜기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소양강을 거슬러 올라 당물골을 빠져나오면서 깜짝 놀랐을 것이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툭 트인 너른 평야! 그들이 그렇게 찾던 이상향이 이런 첩첩산중에 있을 줄이야! 그들은 두말없이 이곳에 눌러 앉아 뿌리를 내렸으리라.

육본 행사기획 담당 김계현 소령
“아버지가 월남전 맹호부대 출신이라 군이 친숙해요”


어느 조직이나 숨어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잘 나타나지 않지만, 막상 그가 없으면 빈자리가 크다. 육군본부 6.25전쟁 60주년사업단 행사기획장교 김계현소령(40·사진)이 그렇다. 그는 늘 바쁘다. 행사기획은 기본이고 각 부대에 협조 구하랴, 조정역할 하랴 눈 코 뜰 새 없다.

“아버님이 월남전 참전용사(맹호부대)였는데, 어릴 때부터 군대이야기를 재밌고 즐겁게 들었습니다. 그런 아버님 영향으로 92년 대학 졸업하자마자 주저 없이 군복을 입었지요. 저도 6.25전쟁세대가 아니지만 그 때 돌아가신 수많은 영령들이 보고계신다고 생각하니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요즘 세대들에게 6.25 당시 일들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까 고민입니다.”

김소령은 2005년 이라크 자이툰부대에 파견 돼 의료 교육 등 대민업무를 맡아 본 경험이 있다. 그만큼 역사와 교육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 꿈도 병사들을 상대로 인성교육과 역사교육을 해보는 것. 스트레스가 쌓이면 계룡산에 오르거나 명상 단전호흡으로 충전한다. 아직 미혼.

“요즘 병사들이 약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동기부여만 해주면 엄청나게 똑똑하고 잠재력도 무궁무진합니다. 어른들이 살아온 세상과 문화와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달라 그렇게 보일 뿐이지요.”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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