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中, 소설 ‘두라라성즈지’ 열풍…평범한 직장여성의 초고속 승진 다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젊은 층 “주인공 닮자” 3년째 큰 인기

중국 인터넷 검색사이트 바이두(百度)에 ‘두라라(杜拉拉)’를 입력하면 두라라를 제목으로 한 뉴스가 주르르 검색된다. 중국인에게 오늘날 두라라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을 상징하는 대명사다. 2007년 9월 무명작가 리커(李可)가 내놓은 소설 ‘두라라성즈지(杜拉拉昇職記)’가 중국 사회에 끼친 큰 영향을 말해준다.

발표 후 3년이 지났지만 이 소설은 여전히 인기다. 중국 최대의 인터넷서점 당당왕(當當網)에서 2008년과 2009년, 올해 상반기까지 소설 부문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나온 2부, 3부를 포함해 모두 4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인기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확인된다. 이 책을 각색한 32부작 TV드라마는 올해 5월 중국 13개 지역에 동시 방송됐고 7월 베이징에서는 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올랐다. 같은 이름의 영화는 흥행수익 1억 위안을 무난히 넘겼다. 올해 중국 영화 가운데 이 관문을 통과한 영화는 현재 10편에 불과하다.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을 뿐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젊은 여성 두라라가 직장에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그는 외국 기업 판촉부서에 들어간 뒤 탁월한 처신으로 인력관리부 총책임자로 고속 승진한다.

왜 중국 13억 인구가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는 이런 스토리에 열광할까. 장선우(張신武)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치열해지는 직장 내 경쟁과 생활 스트레스, 100년 만에 온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이 소설이) 이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영웅을 낳듯이 중국인이 처한 현실 덕분에 이 소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늘날 중국 젊은이가 겪는 세상은 부모 세대와는 다르다. 거인 중국이 ‘무늬만 공산주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섭게 변모했듯 개개인의 삶도, 직장생활도 크게 달라졌다. 배경 없이 성공하려면 능력과 성실성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됐다. 인간성도 좋고 동료와 협조하고 교류해야 한다. 직장 분위기와 개성 사이에 오묘한 균형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해낸 평범한 두라라에게서 중국 젊은이가 자신의 모습을 봤고 나침판을 찾은 것이다. 실제 많은 중국인은 이 소설을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전기(傳記)보다 훨씬 더 참고할 게 많다고 여긴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도 이 소설에서 찾은 다양한 ‘성공비결’이 돌고 있다. 두라라의 동료 왕창(王薔)은 상사의 잘못을 사장에게 고자질하자고 부추긴다. 그러나 두라라는 그런 행동이 직장생활에서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 보면 결국 진다는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더 높은 상사에게 상사의 잘못을 고자질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문구로 정리됐다. 많은 중국 누리꾼이 이 밖에 △떠들고 다닐 필요까지는 없지만 사장이 자신의 중요성을 알게 하라 △칭찬과 인정은 시점이 중요하다 △무턱대고 동료의 요구에 맞추지 마라 등 두라라의 성공비결을 화제에 올리고 있다.

흥미롭게도 작자는 비밀에 싸여 있다고 한다. 리커라는 이름도 필명일 뿐 본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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