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바르가스 요사, 천국의 문 두드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천국은 다른 곳에/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김현철 옮김/560쪽·1만7000원/새물결

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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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씨(사진)가 201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국내외 출판계는 대체로 “받을 사람이 받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품질 보증 작가’란 의미다.

그 노벨 문학상 작가의 소설이 나왔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 중 최근작으로 2003년에 낸 장편이다. 시기별로 바르가스 요사 씨의 소설이 변화를 겪어왔다는 점에서 ‘천국은 다른 곳에’는 2000년대 이후 작가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1844년 4월 어느 날 오전 4시. 소설은 잠에서 깨어난 마흔한 살 여성 플로라 트리스탄이 ‘오늘부터 세상을 뒤집어엎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리아노 트리스탄 씨(플로라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살아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 행복한 결혼생활에 빌붙어 사는 아리따운 기생충이 되었을 테지. 아버지와 어머니와 남편과 자식들의 그늘에 안주해 편안히 사는 둥지 저편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테지. 애나 낳는 기계에다 행복한 노예가 되었을 테지.” 그래서 플로라는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이 노예처럼 살고 있는 남프랑스로 향한다.

이 여성운동가의 혁명의 길과 함께 펼쳐지는 것은 플로라의 외손자인 화가 폴 고갱의 타히티 행이다(두 사람 모두 실존인물이다). 폴 고갱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 중 하나가 플로라 트리스탄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소설은 플로라가 프랑스 전역을 다니면서 노동운동과 여성해방 운동에 힘을 쏟다가 죽음에 이르는 1894년 4월부터 11월까지, 고갱이 1891년 6월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로의 자발적 망명을 선택한 뒤 1903년 5월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삶을 장(章)을 바꿔가면서 펼친다. 작가는 할머니와 손자가 ‘천국’을 추구하면서 살았던 삶을 화려하고도 열정적인 문체로 풀어놓는다.

플로라가 ‘천국’을 꿈꾸며 부르짖는 확신의 목소리는 줄곧 변함없어 단순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녀의 삶의 격정은 생생해서 마음을 울린다. 작가가 좀 더 마음을 기울이는 쪽은 예술가 고갱이다. 이 작가의 고갱은 타히티로 떠나기 전 남겨두고 온 가족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타히티에 머물면서도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인간적인’ 사내다. 소설은 화가의 이렇듯 복잡하고 섬약한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돈이 썩어 문드러진 유럽 문명을 버리고 순수하고 원초적인 세상을 찾아가노라, 겨울을 모르는 그 땅과 하늘, 예술이 상거래 상품으로 취급당하지 않고 삶 그 자체·일종의 종교·일종의 스포츠로 여김받는 곳, (…) 그러나 현실과 네 이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어.”

작품은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고갱의 죽음의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더 정의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천국’으로 꿈꿨던 그의 할머니의 죽음이 그려진 장 뒤에 이어지는 고갱의 죽음에서 작가는 좀 더 구체적인 ‘천국’의 의미를 드러낸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세상, 즉 본능과 근원적인 생명력에 충실한 세상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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