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작업에 앞서 멕시코인 일꾼 10여 명이 둥글게 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일꾼 10명이 하루에 보통 포도 8000파운드(약 362kg)를 딴다. 이들은 포도 한 상자당 2달러 정도를 받는다. 포도밭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실베라도 농업회사’의 피터 리치몬드 대표는 수확체험에 나선 기자가 행여 실수라도 할까 싶어 포도 상태가 덜 좋은 줄을 골라줬다.
오른손에 전지가위를 들고 왼손에는 가위로부터 손을 보호하기 위해 금속 실로 짠 장갑을 꼈다. 멕시코인 일꾼들은 쑥쑥 앞으로 나가며 포도 상자를 채워 나가는데 포도나무 잎사귀를 들춰가며 포도를 찾아 가지를 자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나 에스테이트의 전재만 상무는 “이렇게 서툴게 하면 하루 일당이 2달러”라며 웃었다.
○ 오롯이 깃든 정성과 열정
수확한 포도는 쓴맛이 나는 포도 줄기와 잡티, 너무 익어서 건포도가 된 포도를 골라내는 검수 작업을 거친다. 다나 에스테이트의 와인 메이커 필립 멜카 씨가 자신의 브랜드 와인을 만들기 위해 거둬온 포도를 검수하는 작업을 했다. 멜카 씨는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 씨가 100점을 준 ‘다나 에스테이트 로터스 비니어드 2007’을 만든 사람이다.
포도 자체의 품질과 함께 이 포도를 얼마나 세심한 손길로 다루는지로 고급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이 나뉜다. ‘콜긴’을 생산하는 앤 콜긴 씨는 “위대한 와인은 뛰어난 품질의 포도와 세심한 생산과정을 통해 태어난다”고 말했다. 내파밸리에서 와인을 비교적 대량으로 생산하는 한 와이너리에서는 수확한 포도를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었으며, 수작업 검수 없이 기계를 이용해 신속하게 불순물을 걸러냈다.
반면 ‘콜긴’ ‘아로호’ 등에서는 포도 검수 작업을 하기 전까지 포도의 온도를 차갑게 유지했다. ‘내파 리저브’에서는 검수한 포도를 컵에 담아 온도를 잰 뒤 발효실로 옮기기까지 했다. 적절한 온도는 섭씨 15∼16도. 컬트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6∼10명의 검수 전문 일꾼이 달려들어 포도 알알이 상태를 살피는 한편 작은 줄기, 낙엽까지 걸러냈다.
내파밸리 컬트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들의 포도 따기와 검수는 비슷비슷했지만 이 다음 발효 단계부터는 방식이 모두 달랐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아버지’ 고 로버트 몬다비 씨는 와이너리 안내서 ‘내파 밸리’의 서문에 “와이너리마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법에 자신만의 관점이 있다. 그래서 와인 만드는 일이 흥미로운 것이다”라고 썼다.
○ 시간이 빚어내는 작품
다나 에스테이트에서는 검수를 끝낸 포도를 시멘트 탱크에 넣어 1차 발효를 시킨다. 콜긴은 1층에서 검수한 포도를 곧바로 지하 1층 스테인리스 탱크에 넣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내파 리저브는 대형 탱크에 넣지 않고 바로 오크통에서 1차 발효를 시켰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오크통에서 2차 발효를 시킨다. 발효실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와이너리 직원들이 매일 서너 차례씩 통 안의 재료가 잘 섞이도록 배럴을 굴려줘야 한다. 이 작업은 내부의 가스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두 팔과 상체로 통을 안듯이 잡고 몸 전체에 힘을 실어 아래로 당겨야 반 바퀴 정도 구르는데, 수십 개의 발효통을 매일 굴리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발효가 끝나면 숙성, 여과를 거쳐 병입을 한다. 로버트 파커 씨는 내파밸리의 2008년 빈티지 와인을 이달 말 시음한 뒤 평가한다. 2009년산은 배럴 테이스팅(숙성통에 담겨 있는 상태에서 시음하는 것)을 한다.
■ 내파밸리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는 해양성 기후로 온화하고 따뜻해 포도가 자라는 데 있어 천혜의 조건을 지닌 곳으로 꼽힌다. ‘와인의 메카’ 프랑스 보르도와 유사한 조건을 갖춘 이곳은 포도 품종을 블랜딩하는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아펠라시옹(산지)마다 포도 품종, 와인 양조법까지 상세한 세부 사항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반면, 미국의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 품종부터 양조법까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내파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와인 생산지이지만, 사실 그 면적은 크지 않다. 내파밸리에서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4%가 생산되며, 이 지역에서 포도 재배지는 9%에 불과하다.
올해는 미국의 이상기후로 와인이 포도밭에 따라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름이 서늘해 포도가 서서히 익어 그 맛이 깊어졌다는 것이 내파밸리 와인 생산자들의 설명이다. 와이너리 ‘콜긴’의 앤 콜긴 씨는 “포도가 자라는 시기에 가뭄이 닥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올해는 포도 수확이 예년에 비해 2∼3주 늦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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