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한 미술사학계의 원로 교수 5명이 한국미술사학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다시 강단에 선다. 학회는 11월 1일부터 5일까지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70),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70), 강경숙 전 충북대 교수(70),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71),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68) 등 원로교수들을 초청해 ‘다시 듣는 명강의 시리즈’를 개최한다.》
고고미술동인회로 출발한 미술사학회는 1960년 8월 15일 ‘고고미술(考古美術)’ 창간호를 내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을 통해 학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산수화를 연구하는 길은 외롭고 고달팠다고 회고했다. 이 시대의 산수화에 대해 박사논문을 쓰기 전에 한번도 관련 강의를 듣지 못했다.
그는 “조선시대 회화사는 물론이고 어떤 작품이 있었는지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태였다”면서 “만약 사고라도 나면 혼자 알고 있는 지식이 사라질까 봐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가는 일도 최대한 자제했다”며 미개척 분야의 길을 걸어야 했던 부담감을 털어놨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방치된 유물과 유적을 발굴 및 기록하는 것은 초창기 회원들이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영역이다.
“동해를 통해 불교가 들어온 루트를 조사하던 중 마을 어른이 절벽에 희미한 그림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사슴 호랑이 같은 게 보이는데…. 상당히 오래된 거란 생각이 드는 순간 제대로 조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문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1970년 12월 24일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또 발해 유적과 황복사터, 문무왕 수중릉 발굴에도 참여했다. 원로들의 이 같은 활동은 과거 선조들의 삶을 더욱 확실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됐다.
개발로 문화재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것도 학회의 역할이었다. 강경숙 전 교수(70)는 1994년 경부고속철도의 경주시내 통과를 막기 위해 10개 역사학회를 비롯한 14개 학회장들의 서명을 받고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철도는 김유신 묘역을 우회해 건천으로 옮겨졌다. 강 교수는 “문화재의 중요성을 아는 학자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교수직을 내놓을 각오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회의 전신인 고고미술 동인회가 만들어진 뒤 고고미술 창간호를 낼 때부터 참여해 학회의 변천사를 직접 겪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전국을 답사하고 난 뒤 사진을 일일이 붙였죠. 등사본이 인쇄판으로 바뀌고 동인회가 한국미술사학회로 바뀌다니 세월이 금방 간 것 같아요.”
이성미 명예교수는 학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을 정도로 건강하게 성장한 공을 1세대 선배들에게 돌렸다. “어느덧 90세를 넘긴 선배들이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어 터를 닦았기에 우리가 이만큼 학회를 이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김리나 명예교수는 요즘 후배와 제자들의 발표를 들으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미술사를 가르칠 땐 사람들에게 생소한 학문이었는데 지금은 미술사의 연구 분야가 다양해지고 연구진도 탄탄해졌다”고 말했다. 10여 명이 모였던 과거와 달리 월례연구발표회 때마다 100여 명이 모여 열띤 토론과 발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들 원로는 설립 반세기가 지난 학회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교수는 “영문 홈페이지를 만들고 영문 초록을 첨부하는 등 국제화의 결실을 볼 수 있기 바란다”고, 안 교수는 “선배들과 우리가 이제 얼개를 새우고 뼈대를 만들었다면 후배들은 세세한 부분을 더 깊게 연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회는 창립 50주년 행사의 하나로 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미술사학의 인문학적 성찰’을 주제로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권영필 상지대 초빙교수가 ‘미술사와 인문학적 가치’,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가 ‘새로운 방법의 모색, 한국미술사학의 과제’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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