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회는…정의의 사회이면서 사랑의 질서 속에 있는 사회이다. 현실적 요인들을 고려하면서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 이해 속에 움직이게 하는 노력은 형이상학적 인간 해명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한국 인문학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철학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정의를 논했다. 시장의 자유, 시장의 도덕윤리, 정의의 조건과 실천 등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에 관한 저자의 깊고 넓은 사유의 흔적이 담겨 있다.
책은 1부 시장과 사회, 2부 정의와 그 동력, 3부 정의의 실천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시장의 자유와 그 모순, 시장의 균형과 도덕윤리, 시장과 권력과 이념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2부에서는 정의의 힘, 정의의 사회에 대해 고찰한 뒤 사랑과 인간의 질서가 갖춰진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의 구체적인 정의 실천방안을 탐색했다.
저자는 인문학자답게 따스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정의에 접근해 간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나만의 정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의’다. 그가 “극단의 정의가 극단의 손상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닿아 있다.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인간적인 일이다. 저자는 “자신이 내는 명제의 정당성의 주장은 거의 모든 사고와 언어작용의 속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집착할 수 있지만 그것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는다. 정의는 늘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정의는 도덕적 자기확신의 무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결국 정의라는 것도 사회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그래서 “각자가 제기하는 정의의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당성의 개념을 다른 개념들과의 연계 속에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같은 견해는 닫힌 정의가 아니라 열린 정의를 지향한다. 내 시각 속의 정의를 뛰어넘어 타인의 정의와 만나는 정의다.
저자는 또한 정의의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강조한다. “정의의 움직임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이상들이나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하여 스스로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를 포함해 모든 도덕적 당위는 자칫하면 자아의 확대를 위한 원한의 기획으로 변할 수 있다.”
정의에 대한 이 같은 사유는 자연스럽게 사랑과 인간미가 넘치는 정의에 이르게 된다. 분개심을 넘어 넉넉한 덕성이 담겨 있는 정의를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의의 질서도 참으로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원리가 되려면 궁극적으로 사랑의 질서에 일치하는 것으로 자기변용을 이루어야 한다.”
저자는 “좋은 사회는 정의의 사회면서 사랑의 질서 속에 있는 사회”라고 거듭 강조한다. 사랑이 담긴 정의, 인간적인 정의다. 또한 품격과 예의가 있는 정의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깊은 사유를 따라 정의의 다양한 면모와 만나게 된다. 글은 전체적으로 깊이 있으면서 간명하다. 정의에 관한 품격 있는 지적 에세이를 읽는 듯하다. 정치적 사회적인 거창한 이슈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정의가 왜 철학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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