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개막해 11월 21일까지 열리는 제12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에서 특히 많은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는 코너가 실물 크기의 한옥 공간 모형이다. 참가한 건축가 5명 중 한 사람인 조정구 구가도시건축사사무소 대표(44)가 자신이 2003년 개조해 입주한 서울 서대문구 한옥 일부를 전시 공간 한쪽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조 대표는 2000년 서울 구석구석을 실측 답사하면서 한옥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옥을 별도의 오브제로 놓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 서울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시한옥’이라는 화두를 얻었다. 2003년 한옥 작업으로 처음 완공한 서울 종로구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도 마침 관심을 갖고 있던 미국식 목구조 양식을 전통 건축에 응용해본 시도였다.》
언뜻 수원 화성(華城)을 연상시키는 모양새의 담벼락 안에 세 칸 너비 대청마루를 가진 도시한옥을 앉혔다. 설계자 조정구 씨에게 한옥은 옛 유물의 재현 작업이 아니다. 한국 현대건축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하나일 뿐이다.
주방 입구에서 바라본 식당. 공간 구성의 문법과 재료는 한옥의 규범을 따랐지만 전통가구는 하나도 놓지 않았다. 모든 요소는 한옥이라는 틀 위에서 편리한 현대적 생활공간을 만들기 위해 쓰였다.사진 제공 구가도시건축한옥을 현대건축의 여러 주제 가운데 한 갈래로 인식하는 그의 한옥 작품에는 전통양식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다. 실용적 공간 구성을 위해 유연한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어설픈 변칙은 보이지 않는다. 2007년 한국목조건축대전 준공부문 대상, 한국공간디자인상 상업디자인부문 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경주 한옥호텔 ‘라궁’은 한옥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서울의 도시한옥에서 모티브를 얻어 객실마다 독립적인 작은 마당을 갖게 하는 파격을 시도했지만 건물 외관에서는 고풍스러운 품격을 놓치지 않았다. 3월 완공한 종로구 가회동 45-2에 지은 한옥은 현대적인 생활공간의 편리한 기능성을 유지하면서 한옥의 독특한 공간감과 조형미를 살려내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서 얻은 또 하나의 답안이다.
한옥은 보통 도리(서까래를 지지하기 위해 건너지르는 나무)를 기둥 위에 물려 이어낸다. 하지만 이 건물은 세 개의 직육면체 공간이 약간씩 어긋나게 배열돼 있어 모서리가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살짝 이지러진 사다리꼴 모양의 140m² 터 안에 안방, 대청마루, 주방 등 세 덩어리의 직육면체 공간이 마당을 빙 둘러싸도록 배치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어긋난 연결부는 오히려 넉넉하게 벌려 그 사이로 작은 마당 두 개가 더 생겨나도록 만들었다. 동북쪽 담벼락에 맞닿은 이 두 개의 작은 마당은 동남쪽의 안마당과 함께 사용자의 동선과 시선에 풍부함을 더한다.
주방 공간의 북쪽 외벽 도리 끝은 대청 동쪽 외벽 기둥이 아닌 도리 중간쯤에 닿아 있다. 조 대표는 기둥이 선 위치에 도리 끝을 억지로 맞추는 대신, 주방 도리가 닿은 부분의 대청 외벽 안에 내력 샛기둥을 감춰 넣었다. 하중의 일부를 받아내는 이 보이지 않는 ‘벽 속 기둥’은 한옥의 기본 구조를 지키면서 공간 활용의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돕는다. 주방 외벽도 모서리 기둥보다 조금 튀어나오게 해 조리 등 작업공간이 넉넉해지도록 만들었다.
“공간 외관의 질서와 구조의 질서 어느 쪽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거다. 기존 도시한옥은 실질적 필요를 위한 공간 변용을 할 때 외관의 질서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벽을 밀어내 지붕 처마를 없애버린 ‘땅딸한 한옥’이 그런 예다. 눈에 거슬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효율적인 변화를 주는 것이다.”
정형으로 주어지지 않은 땅 위에서 고유의 정형적 공간 구성을 고집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주방 외벽의 유연한 변화는 내부 공간의 여유와 함께 외관의 생동감도 더했다. 대문 쪽으로 볼록 튀어나온 식당 남쪽 창은 집에 돌아온 가족을 반기는 따뜻한 저녁 밥상의 느낌을 준다. 담 아래로 장독대를 놓은 대문 옆 작은 마당과 큰 마당 바닥 곳곳에는 지하 서재로 볕을 들이는 유리 천창을 냈다. 북쪽 구석의 작은 마당은 에어컨 실외기를 놓기에 적당하다.
대청 뒤에는 지하 개인작업실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숨어 있다. 지하 서재 천장은 무지개처럼 둥글려 동굴 속에 있는 듯 아늑한 느낌을 갖도록 했다. 지상 건축면적 60m², 주차장을 포함한 지하 건축면적이 130m²에 불과한 공간이지만 어느 곳에서건 여유가 넘친다. 직사각형으로 똑 떨어지지 않는 모양의 아담한 땅 위에 반지하 주차장을 가진 효율적 생활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한옥을 현대 건축의 한 파트로 끌어오면서 건축가가 해야 할 역할이 뭘까. 목수가 작업 중에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던 공간 구성과 디테일을 미리 계획하는 일일 거다. 하지만 많은 건축가들은 일단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옥은 이래야 한다’고 단정해 버린다.”
조 대표는 공간 설계는 물론 작업 대부분의 시공도 직접 진행한다. 현장 검증을 통해 세부적인 요소에서 그때그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콘크리트 같은 현대적인 재료와 건축언어로 한옥을 변형하는 것만을 한국 현대 건축가의 임무로 여기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통의 계승과 승화’라는 애매한 표현이 한옥의 현대화를 방해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체에 대한 인식 없이 관념적으로 대상에 대해 판단한 탓이다. 한옥은 재생된 화석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변화하며 생명력을 유지해 온, 이상적인 우리의 건축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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