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0년 11월 영조는 조부인 현종의 탄신 120주년을 맞아 중국 연행(燕行·사신이 중국 베이징에 가던 일)단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했다. 심양(선양)의 조부가 살던 곳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오라는 명이었다. 아버지 효종이 병자호란 뒤 볼모로 잡혀갔기 때문에 현종은 조선 임금 중 유일하게 중국에서 태어났다. 사행(使行)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화원 이필성은 심양을 둘러보고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을 남겼다. 명지대 LG연암문고가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은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1631년 사신 정두원은 명나라 사행에서 돌아와 인조에게 올릴 보고서 ‘조천기지도(朝天記地圖)’를 작성했다. 그는 평안도를 출발해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해로를 거치고, 중국의 여러 도시를 들러 연경(燕京·베이징)에 도착했다. 이런 여정이 그가 남긴 그림에 상세히 담겼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서양 교사를 만나 화포와 천리경, 자명종 등 서양 문물을 받아 조선에 들여왔다.》
① 1760년 화원 이필성이 현종이 살던 심양(선양)을 둘러보고 그린 ‘심양관도첩(瀋陽館圖帖)’의 일부. ② 정두원이 1631년 명나라 사행을 다녀와 왕에게 올린 보고서인 ‘조천기지도(朝天記地圖)’. ③ 조선 사신 유득공이 청나라 문인 여원과 이당에게서 받은 시 ‘모우심국서(冒雨尋菊序)’. 검은 종이에 금분으로 썼다. 사진 제공 실학박물관
■ 실학박물관 국내 첫 테마전
10월 30일∼2011년 2월 28일 경기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서 열리는 ‘연경, 세계로 향하는 길’전에서 이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연행을 테마로 국내에서 열리는 최초의 전시로 42건 53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문명 교류의 길이자 실학 형성의 계기가 된 연행의 의미를 연행록과 지도, 그림, 관련 문학작품을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연행은 명대에는 중국 천자를 만난다는 의미로 조천(朝天), 청대에는 수도인 연경을 다녀온다는 뜻으로 연행으로 불렸다. 조선 왕조는 매년 정기적으로 두 차례, 비정기적으로 한두 차례 연행사를 파견했다. 1637∼1893년 250여 년간 400여 회에 걸쳐 파견된 연행사는 조선의 정치·경제·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연행에는 실학자들이 참여했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 중국의 선진 문물을 직접 보고 돌아온 실학자들은 조선 사회를 바꿨다. 이들은 세계의 문명을 접하고 중국 지식인과 학문적 대화를 나누기 위해 연행을 떠났다. 사신으로 온 유득공을 위해 청나라 문인 이당과 여원이 당나라 때 시를 검은 종이에 금분으로 쓴 ‘모우심국서(冒雨尋菊序)’와 연행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 밖에 1572년 명나라 신종 황제의 등극을 알리는 중국 사신이 평안도 의주의 압록강가에 있는 의순관에 도착하는 모습을 그린 ‘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 청나라 수도 연경을 상세히 그린 ‘연경성시도(燕京城市圖)’, 1624년 인조의 책봉 요청을 위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이덕형이 바닷길 여정을 담은 ‘연행도폭(燕行圖幅)’ 등도 전시한다.
11월 6, 20일에는 신춘호 한중연행노정답사연구회 대표가 과거 연행길대로 서울∼베이징의 노정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고 강연회를 연다.
전시 개관일인 30일에는 ‘연행의 문화사’를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린다. 임형택 한국실학회장이 ‘17∼19세기 동아시아 상황과 연행·연행록’으로 기조 강연을, 이철성 건양대 교수가 ‘조선후기 연행무역과 교역물품’, 김혈조 영남대 교수가 ‘연행사신의 식생활’로 주제발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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