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전문가 “7세기 나주 목간, 100년 뒤 日유물과 비슷”

  • Array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망명 백제인, 日목간문화도 바꿔”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2008년 발견된 6∼7세기 백제 목간(왼쪽). 2행으로 글자를 적고 하단 부분을 비스듬하게 다듬었다. 8세기 일본에서 쓰인 목간(오른쪽)은 이 영향을 받아 복수행으로 기록했고 제작 기법이 유사하다. 사진 제공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2008년 발견된 6∼7세기 백제 목간(왼쪽). 2행으로 글자를 적고 하단 부분을 비스듬하게 다듬었다. 8세기 일본에서 쓰인 목간(오른쪽)은 이 영향을 받아 복수행으로 기록했고 제작 기법이 유사하다. 사진 제공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나무에 글자를 새긴 6∼7세기 백제의 목간(木簡)이 이후 8세기 일본의 목간 활용에 영향을 줬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8, 29일 전남 나주시 중흥 골드스파&리조트에서 여는 ‘6∼7세기 영산강 유역과 백제’ 국제학술대회에서 와타나베 아키히로(渡邊晃宏) 일본 나라(奈良)문화재연구소 사료조사실장은 ‘일본 고대의 도성 목간과 나주 목간’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나주 복암리에서 발견된 목간에서 목간의 서풍(書風)과 자형(字形), 가공 방법 등에서 한국과 일본 목간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이 학술대회는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과 영동리 고분을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에서 발달한 백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열린다. 2008년에 출토된 복암리 목간은 당시 도성(부여)을 제외한 지방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이 대회에는 전체 16개 발표 중 목간을 주제로 한 발표만 11개에 이른다.

와타나베 실장은 미리 배포한 논문에서 “백제의 한 지방사회에서 일본의 8세기 목간 문화로 통하는 연결점이 발견된 것은 백제 목간 사용 문화가 이제까지 알던 것 이상으로 높은 수준이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지지 않고 둥근 육조풍의 서풍으로 기록한 것과 하단을 앞뒤로 비스듬하게 깎아 옆에서 보면 뾰족한 형태인 것, 2행으로 나눠 문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등을 백제가 일본에 영향을 끼친 근거로 들었다. 660년 백제 멸망 후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망명한 시기와도 일치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7세기까지 목간에는 요점만 적고 주로 말로 명령을 내리던 일본의 정보전달 체계가 8세기 들어 변한 것도 백제의 영향이다. 하위자가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만 목간에 간단하게 쓰던 것이 8세기 들어 복수행으로 목간에 자세히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상부의 명령이 목간을 통해 내려졌다는 것이다.

와타나베 실장은 “나주 목간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를 더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회에서는 나주 목간에 대해 당시 발굴책임을 맡았던 김성범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교수, 윤선태 동국대 교수, 히라카와 미나미 일본 역사민속박물관장 등이 발표에 나선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