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간섭주의는 절대적인 도덕원칙이 아니다. 때로는 지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용인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인도주의적 개입’은 많이 남용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잔악성과 고통의 정도가 극심하고, 그 지역의 어떠한 세력도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도덕적으로 필요하다.”》
정의를 위한 전쟁, 정의로울까
‘전쟁’과 ‘정의’는 서로 반대 의미를 가진 단어처럼 보인다. 폭력과 파괴, 인명 살상을 수반하는 전쟁은 세계 평화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않은 전쟁을 구분하는 것은 자칫 위험해 보일 수 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전쟁은 사라져야 하는데,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말은 마치 전쟁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원 교수인 저자는 윤리적 시각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연구해왔다. 그는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은 일어난다. 전쟁을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라고 단정해버리면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전쟁이 진행되는가’ 같은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만큼 우리는 ‘왜’와 ‘어떻게’의 문제를 고민해야만 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정의로운 전쟁론은 어떤 전쟁이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이론이 아니다. 그 대신 어떤 전쟁에서 정의가 얼마나 이뤄질 수 있는지, 전쟁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이 얼마나 정의로운지 평가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쟁론이 전쟁의 필연적인 결과인 인명살상 등의 상흔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정당하게 전쟁 속으로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침략과 잔학행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5장 ‘인도주의적 개입의 정치’를 보면 정의로운 전쟁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대량학살이나 인종청소가 벌어지고 있는 국가에서 이런 상황을 스스로 수습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쟁을 피하는 것보다 개입하는 편이 오히려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르완다에서 학살을 종식시키기 위한 군사력의 사용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걸프전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미군의 공격으로 인한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는 적었지만 이라크 경제기반 모두를 타격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군의 공격은 쿠웨이트 해방과 이라크 군사력 진압이라는 당초의 목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인 미국은 최후의 보루로서 개입국가가 돼야 하는가. 이 질문에 저자는 “그래야 한다”고 답한다.
모든 국가는 세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경우 이것은 단순히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자 과제다. 비문명적, 비인류적 행태는 억지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방식으로 다른 지역까지 곧 확대된다. 머지않아 문명세계 근처에서 혼란과 무법의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온다.
이 책은 “어느 누구도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미국은 더 적은 자원을 보유한 다른 나라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다른 나라의 문제에 개입하게 될 것이며 그래야 한다. 이제 미국의 힘에 대한 기존의 회의적 태도를 버리고 필요성을 신중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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