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기행’. 책 제목만 보면 시골 풍경이나 맛집 소개가 담겼을 것 같다. 저자 강신재 씨(30·사진)도 시골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껍데기만 보고 다녔다. 하지만 “시골을 세상의 한 귀퉁이로, 시골 사람들을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가슴이 무서웠다.”
도시에서만 자란 그가 시골의 삶을 오롯이 체험하고 기록하려는 생각에 길을 떠난 것은 2년 전. 한 곳에서 2, 3일씩 머물며 24곳의 삶의 흔적을 채집했다. “막상 부딪쳐 보니 만만치 않았죠. 시골 인심이 생각 같지 않더군요. 손님을 위해 선뜻 방 내주는 분도 없고….”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인천 세어도는 뭍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700m인데 전기가 종일 들어온 지는 1년밖에 안 됐다. 혼자 사는 한 할머니와 함께 잤는데, 충전을 위해 취재용 녹음기를 콘센트에 꽂아 놓으면 할머니는 계속 빼버렸다. “전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데….” 세수도 빗물 두 바가지로 했다. 전남 진도군 가사도로 향할 때는 바다 밑바닥까지 잡아먹을 듯한 짙은 안개가 길을 막았다. 선장을 졸라 배를 띄웠다. “나중에 들어 보니 뱃사람들은 그렇게 짙은 안개 속에서는 절대 항해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목숨 걸고 간 셈이죠.”
고생길의 열매는 값졌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데 녹이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삶이 곳곳에 있었다. “시골은 이야기의 저수지였어요.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인문학이랄까…, 박물관에서나 보아 오던 생생한 과거가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자연에 대한 혜안을 볼 수 있었죠.”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음정토봉마을에서 할아버지들이 들려준 꿀벌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의 본보기였다. 할아버지들은 “꿀벌이란 놈들은 꿀을 따러 4km를 날아간다. 벌들은 늦으면 풀을 또르르 말아다가 풀섶에 누워 잔다”고 했다. 할당량을 못 채운 자기반성일까, 통금 시간 넘기면 현관에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보초벌의 가혹함 때문일까, 여왕벌의 징계가 두려워 머리를 굴려서 짜낸 꾀일까….
자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체득하는 것도 신기했다. 가사도의 뱃사람은 등대신호음만 듣고 안갯속에서 뱃길을 찾아냈다. 괭이갈매기의 날갯짓으로 바람을 읽었고, 냄새만으로 고기를 품을 바다를 알아냈다. “시골 노인들은 저녁에 가마니 두 개 짜면 자야 할 시간임을 알고, 배춧속을 보고 날씨를 아는 게 신기했어요. 삶 속에서 얻은 사람들의 지혜가 놀라웠죠.”
하지만 막상 시골생활에 뛰어든다면 현실은 만만치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소개된 전북 장수군 계남면 장수하늘소마을처럼 귀농인들의 생활은 낭만으로 시작해 투쟁으로 끝난다. 지역주민과의 관계, 농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문제 등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정겹고 쓸쓸한 이야기도 책에 담겼다. “시집온 날부터 시어머니랑 한 방을 썼지. 돌아가실 때까지. 시집와서 옷끈을 안 끌러 놓아서 여름이면 곰팡(곰팡이) 날라 그려. 신랑? 신랑은 사랑서 잤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터전인데 이제 앞날은 알 수 없지 뭐… 자손들이 살아야 하는데 젊은 사람이 이런 데서 뭐 해 먹고 살아. 우리가 마지막일 것 같아.”
저자는 “도시에서만 살아온 이들에게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시골 사람들의 삶에는 이야기가 있어요. 20, 30대는 풍부한 감성을 배울 수 있고, 50, 60대는 잠시 잊었던 세계에 대한 눈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교과서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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