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대국 일본에서는 한 해 8만여 권의 책이 쏟아진다. 한국의 두 배에 이르는 신서(新書)의 양도 방대하지만 소설 등 문학에서부터 메모 잘하는 법, 기억력 높이는 법 등 실용서적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주제도 다양하다.
출판사 매거진하우스가 2009년 12월에 펴낸 ‘단샤리(斷捨離)’도 남다른 주제를 다룬 교양서적 중 하나다. 부제인 ‘새로운 정리정돈 기술’만 보면 공간 활용법을 다룬 실용서적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책을 들춰보면 사물과 자아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철학서적에 가깝다. 청소와 정리정돈이라는 일상적 행위에서 사물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끌어내는 저자의 사유가 돋보인다.
‘단샤리’란 ‘집착을 버리고 심적 평온의 상태를 지향하는’ 요가철학에서 따온 말이다. 물건의 홍수 속에서 필요 없는 것을 생활로부터 차단하고(斷行), 쓰지도 않으면서 쌓아두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과감히 정리하는(捨行)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 물건에 대한 소유나 집착에서 한발 떨어져 여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離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일본판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인 야마시타 히데코(山下秀子)는 요가철학에 심취하면서 얻은 영감을 청소와 정리 정돈에 접목시켰다. 청소와 정리 정돈이 일회성 행동으로 단지 방을 깨끗이 하는 게 목적이라면 ‘단샤리’는 치움으로써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사물과 나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하는 연속적인 반추의 과정이라고 책은 주장한다.
이 책은 출판 후 10개월 동안 10여만 부가 팔리면서 일본 사회에 ‘단샤리 열풍’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만들었다. TV와 신문의 각종 책 소개 코너에서 화제의 책에 올랐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도 책과 관련된 블로그와 동호회가 줄을 이으면서 ‘단샤리하다’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이 같은 단샤리 열풍의 원인을 일본 독서평론가들은 일본 사회의 모순에서 찾는다. 각종 신상품으로 넘쳐나는 대중소비사회와 이 많은 물건을 수용 보관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일본의 좁은 집(공간). 물건을 사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와 주변을 말끔히 정리 정돈해야 한다는 일본인 특유의 강박관념. 단샤리는 이 같은 모순을 절충하는 해법이다.
저자는 묻는다. “살 빠지면 입겠다고 모셔둔 바지, 언젠가 읽으리라 쌓아둔 먼지 뽀얀 책이 공간을 전부 차지해 질식할 것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냐”고.
온갖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보관인지 방치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 안을 정리하지 못하고, 어수선한 집에 들어가기 싫어 집을 더욱 필요 없는 물건으로 채우는 ‘현실도피형’, 과거의 추억에 얽매여 과감해지지 못하는 ‘과거집착형’,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모든 것을 보관하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미래불안형’.
저자는 “당신이 어떤 유형이건 간에 정리 정돈하고 싶다는 욕구를 과감히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물건에 연연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버리기 아까워 자꾸 보관하려드는 것은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로, 주체가 본인이 아닌 사물로 주객이 전도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자신의 생활에 필요 이상의 물건이 유입되는 것을 막고, 지금 쓰지 않는 물건을 보관만하고 있을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되돌려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이야말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굳이 일본 사람이 아니어도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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