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시절에 대한 로망과 예찬 더 넓어지고 깊어진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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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5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 ‘더블’ 출간

5년 만이다. 첫 소설집 ‘카스테라’ 이후 이 소설가의 행보는 부지런했다. 두 권의 장편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상재한 중에 차곡차곡 모은 단편이 24편이다. 박민규 씨(42·작은 사진)는 이 중 18편을 골라 두 번째 소설집 ‘더블’(창비)을 냈다.

제목만 ‘더블’이 아니라 소설집도 ‘더블’이다. 단편 9편씩 실린 책 두 권으로 묶었다. “LP 시절의 ‘더블 앨범’에 대한 로망 때문”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상·하권도 아니고 ‘side A’ ‘side B’라는 부제목이 달렸다. 책 표지에는 레슬러의 마스크를 쓴 자신의 사진(큰 사진)을 실었다. 앨범 속지 같은 일러스트 화집도 들어 있다. “지난 시절 나를 이끌어준 모든 ‘더블 앨범’에 대한 헌정이자 크고 묵직한, 그리고 근사했던 LP 시절의 정서에 대한 작은 예찬입니다.”


소설집의 작품들은 LP 시절의 정서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거꾸로 떠올리게 한다. 단편 ‘근처’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40대 남성이 고향에 돌아와 느끼는 심경과 체험하는 일들을 차분하게 펼쳐 보인다. 남자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왁자하게 떠들어 보고 여자 동창과 오랜만에 만나면서 감정의 미세한 떨림도 겪어 본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남자의 내면에 흐르는 그 감정들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전작 ‘카스테라’에서 씁쓸한 유머를 섞은 환상적인 이야기로 충격을 줬던 작가는 이번에는 본격소설의 문법으로 문체의 미학을 살린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생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한다. 스스로 ‘석고 데생 같은 작품’이라고 일컫는 결과물은 LP판의 음악 같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노인의 사색을 담은 ‘누런 강 배 한 척’도 그렇다. 기발한 상상력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겐 박 씨의 ‘본격소설’이 낯설고도 신선한 글쓰기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작가는 독자들의 기대에 충실하게 부응한다. “나는 흡수한다. 분열하고 번식한다.” 작가의 이 선언을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래에 행해지는 심해 탐사를 다룬 ‘깊’, 시공을 알 수 없는 여러 우주의 이야기를 담은 ‘크로만, 운’ 등 본격소설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품들은 박 씨가 ‘흡수하고, 분열하고, 번식하는’ 작가임을 확인시킨다. ‘합류해야 하는데//문득 눈발이//눈앞을 휘몰아친다’ 같은 시적인 문단 나누기라든지, 의도적으로 글자 크기를 조절한다든지 하는 등 형식 역시 실험적이다. 그것은 LP 시대 음악의 정신이 실은 기성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떠올리게 한다.

수상 소감이든,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이든 늘 열심히 쓰겠다고 밝혀온 박 씨다. 튼실한 소설집 두 권으로 그는 그 다짐을 실천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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