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인들이 사회의 소외계층에 눈을 돌리고 있다. 경제적 풍요가 갖춰졌지만 빈부의 격차도 커지면서 소외되는 인간 군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다음 주 출간되는 계간 ‘세계의문학’ 겨울호가 이 같은 현상을 다룬 특집을 실었다.
198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에서도 소외의식은 중요한 코드였지만 임금 착취 등에 시달리는 조직 내 노동자가 대상이었다.
이와 달리 2000년대의 젊은 작가들은 조직 자체에서 추방당하거나 그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문학적 대상으로 삼는다.
신(新) 리얼리즘 시대로 부를 만하다.》 올해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김혜나 씨(28)의 장편 ‘제리’가 대표적이다. 2년제 야간대 여학생과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청년의 희망 없는 시간을 묘사한 이 작품은 신인 작가의 첫 책으로는 이채롭게 3만 부 이상 팔리면서 선전했다. 평론가 조효원 씨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이 ‘아무런 규정도 얻지 못한 채 부유하는 삶이며 그들의 행동 역시 필연적으로 도덕·비도덕의 이분법을 비켜가게 된다’고 설명한다. 19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이 고용자의 비도덕성과 노동자의 도덕성을 강조했던 데 반해 2000년대의 문학 속 소외 계층에는 도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게 된 것이다. 젊은 작가 김사과 씨(26)의 장편 ‘풀이 눕는다’에도 여동생이 주는 용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20대 소설가가 등장한다. 이들 주인공은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만 문화적 욕구는 높기 때문에 소외감이 더욱 깊어진다.
평론가 박슬기 씨는 올해 나온 신인들의 시 작품에 주목한다. 서효인 씨는 시집 ‘소년 파르티잔의 행동지침’에서 대형 마트에 밀려 위기에 처한 ‘마리슈퍼 주인장’(‘슈퍼 마氏’)이나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삶을 사는 회사원(‘그리고 다시 아침’) 등을 불러낸다. 박 씨는 “시인은 이들에게 가치 평가를 내리지 않으며, 이것은 1980년대와 달리 이들을 아우르는 공동체 의식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계층의 이익을 호소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 개별적인 욕망을 다양하게 분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효인 씨의 시 ‘소년 파르티잔…’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선언은 ‘만국의 소년이여 분열하세요’로 바뀐다.
박슬기 씨는 김산 씨(34)가 최근 발표한 시 작품 ‘파리채를 활용한 러시안훅 트레이닝’ ‘플로리스트’ 등에 주목한다. “이들 시에서는 일을 해도 빚의 무게를 덜어낼 수 없는 사람들, 이주 노동자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면서 “이들을 개별적 주체로만 다룬다는 점에서 과거의 리얼리즘 문학과 구별된다”고 박 씨는 말했다.
상반기 출간돼 5000부 이상 나간 김이설 씨(35)의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실린 단편 ‘열세 살’에서도 지하철 노숙인 소녀가 등장하지만 작가는 사회 현실에 목소리를 내는 대신 주인공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특집을 기획한 시인 김행숙 씨는 “요즘의 경제적 약자인 젊은이들은 덜 먹어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의식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전 방식으로 계급화하기 어렵다”고 설명하며 “그러나 소외계층에 대한 이런 새로운 시선은 우리 문학이 언어유희나 내면 탐색으로부터 탈출하는 징후로 읽을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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