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만큼 아름답고 질긴 ‘2代인연’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8일 03시 00분


‘천년한지 백년인연’展여는 장용훈-홍춘수 한지匠

전통 한지에만 매진해온 한지장 장용훈 씨(왼쪽)와 홍춘수 씨. 이들은 서로를 ‘형님’ ‘아우’로 부르며 선대부터 맺어온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 류가헌
전통 한지에만 매진해온 한지장 장용훈 씨(왼쪽)와 홍춘수 씨. 이들은 서로를 ‘형님’ ‘아우’로 부르며 선대부터 맺어온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 류가헌
아스라이 내비치는 아름다움 속에 1000년을 견뎌도 끄떡없는 질김을 간직한 한지. 한지를 만들려면 닥나무를 베어 삶기부터 종이를 뜨는 과정까지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 선대부터 인연을 맺어 한지 만드는 일에만 정진해온 두 장인이 함께 한지 전시회를 연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천년한지, 백년인연’전. 색지와 음양지(陰陽紙) 등 한지 18종 100여 점을 선보인다.

“두 분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으신데, 함께 전시회를 여는 게 어떠시냐고 제안했죠.” 중요무형문화재 장용훈 한지장(77)의 아들 장성우 씨(43)는 “몇몇 사람만이 한지를 제작하게 된 오늘날, 두 분의 깊은 인연이 뜻깊다”고 말했다.

올해 나란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 한지장과 홍춘수 한지장(71)의 인연은 두 사람의 부친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 각자 종이를 팔던 두 사람의 아버지 장세권, 홍순성 씨가 전남 순천장에서 만나 호형호제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장날마다 만나 왕래를 하던 중 6·25전쟁이 터지게 됐고 인연이 끊겼던 두 사람은 닥나무가 많이 나는 전북 전주에서 다시 만났다. 홍 한지장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거기서 다시 만나셨으니 우연은 아니지”라고 했다.

전주에서 한지 작업을 하던 두 집안은 전쟁 직후 전북 임실군 청웅면으로 나란히 이사해 이웃으로 지내며 공방일과 집안일을 서로 도왔다. 자연히 아들인 장 한지장과 홍 한지장도 가깝게 지냈다. 홍 한지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말다툼 한 번 없었고 서로 속말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장 한지장은 1970년 아버지 장세권 씨가 작고한 뒤 닥나무가 많이 나는 경기 가평군으로 터전을 옮겼다. 전화나 교통편이 좋지 않던 시절, 밤낮없이 종이를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형님과 연락은 닿지 않아도 어르신 묘소는 그냥 두면 안 되겠더라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묘소를 돌봐드리려 했지.” 1990년대 중반, 아버지 대를 이어 한지 만드는 길로 들어선 장성우 씨가 연락해오기 전에도 홍 한지장은 장 한지장의 아버지 묘소를 살뜰히 돌봤다. 장 씨는 “할아버지 산소가 잘 관리된 모습에 감동받고 감사했다”고 전했다.

그 뒤 두 한지장은 1년에 두어 번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장성우 씨가 아버지를 모시고 임실로 가기도 하고, 무릎이 안 좋은 데다 난청으로 대화가 어려운 장 한지장을 걱정해 홍 한지장이 가평으로 가 ‘형님’의 안부를 묻곤 한다.

“전시회를 연다니 아버지는 ‘아우와 그간 변변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는데 잘 됐다’며 기뻐하셨어요.”(장성우 씨) “값싼 수입 종이에 밀린 전통 한지를 제작하느라 외로워진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전시회를 열게 돼 반갑고 고맙지.”(홍 한지장) 19일과 20일에는 두 장인이 한지 제작 시연회를 연다. 02-720-2010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