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이끄는 군대가 이곳 중명전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조약문을 수정하고 외부대신의 직인을 강제 날인해 (다음 날인) 18일 오전 1시 반, 이 자리에서 늑약이 이뤄졌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을사늑약 강제일 특별강연. 기조강연을 맡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일본 측이 작성한 문서에는 17일로 적혔지만 실제 늑약이 이뤄진 시간을 감안하면 을사늑약 체결일은 18일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연은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을사늑약 105주년을 맞아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전개과정을 되짚어보기 위해 개최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은 “을사늑약이 이뤄진 날과 장소에 맞춰 강제병합 100주년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을사늑약은 물론 헤이그특사 파견까지 이뤄졌던 중명전은 우리 근대사의 질곡을 모두 지닌 비운의 장소”라고 평가했다.
120여 명이 모인 강연에서 이태진 위원장에 이어 강연에 나선 이상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을사조약의 불성립론 재검토’를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을사조약은 진행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체결 과정에서 일어난 외부대신의 인장 탈취 등의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양 외교관들이 관찰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주제로 발표한 정상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영국과 독일의 외교정책과 외교문서들을 비교하며 “자국과 동맹국인 일본의 강제성을 묵과한 영국과 달리, 중립적이었던 독일 공사 잘데른의 관점에서 보면 을사늑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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