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 문화사의 키워드 중 하나가 1930년대의 재발견이다. 일제강점의 암흑기로만 기억되던 그 시대를 근대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역동적 시대로 재조명하는 문예작품들이 쏟아졌다. 1920∼40년대 한국 근대 연극사의 뒷모습을 좇은 ‘경성스타’(김윤미 작·이윤택 재구성 및 연출)의 제목에서도 그런 체취가 느껴진다. 연극이란 새로운 볼거리를 타고 대중스타로 발돋움하고파 시골에서 상경한 배우지망생들의 동경과 좌절의 드라마….
반세기 훨씬 전 우리 연극계의 풍경을 3칸짜리 회전무대 위에 담아낸 이 작품에는 실제로 그런 흐름이 존재한다. 1923년 도쿄 유학생들이 조직한 토월회의 ‘부활’ 공연에서 카추샤 역을 맡아 조선 최초의 주연 여배우가 된 이월화(김소희)가 주도하는 그 흐름을 ‘여배우의 트랙(track)’으로 부를 만하다. 1936년 동양극장에서 초연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여주인공 홍도 역으로 인기 절정에 올랐지만 스물한 살에 요절한 차홍녀(하지은)와, 그런 근대 여배우들의 여러 모습을 투영한 전혜숙(배보람)이 그 주요 인물이다.
“조선의 여배우들은 연극을 하기 위해 모두 집을 나갔어. 그래서 조선의 여배우들은 모두 카추샤고 모두 노라야. 그러니까 집을 나간 노라가 어디로 갔겠어, 바로 극장이야. 집을 나간 노라는 극장에 가서 배우가 되었다, 어때?”
1933년 스물아홉에 요절했지만 연극에선 퇴물배우로 살아남은 것으로 설정된 월화가 혜숙에게 들려주는 이 대사에는 시대의 수레바퀴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애환이 녹아있다. 그것은 기생 출신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사랑을 위해 아낌없이 순정을 바치는 홍도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하지만 이 연극이 이 트랙만 따라갔다면 2001년 방영된 KBS 주말드라마 ‘동양극장’의 아류작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연극은 당시 대중극의 속살을 파고들면서 친일연극에 대한 통념에 반기를 드는 ‘친일논쟁 트랙’을 함께 펼쳐낸다.
이 트랙에서 극은 1930∼40년대 최고의 대중극작가였지만 친일극작가이자 월북극작가라는 이중의 낙인이 찍혀 잊혀진 극작가 임선규(김용래)의 연극세계를 파고든다. ‘홍도야 울지 마라’라는 주제곡으로 유명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쓴 그는 당시 통속적이란 평단의 비판을 받았고 해방공간에선 친일극작가라는 이유로 비난의 표적이 됐다. 이를 견디다 못한 그는 역시 친일파였던 아내 문예봉(한채경)을 따라 월북한 뒤 절필했다.
극은 임선규의 친일연극 ‘동학당’(1939년)과 ‘빙화’(1941년)를 극중극 형태로 보여준다. ‘동학당’은 일제 침략에 대항했던 동학혁명을 혁명에 참여한 농민의 시각에서 극화해낸 대중역사극이었다. 일제가 친일연극을 강요한 국민연극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은 ‘빙화’는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의 강제이주사건에 희생된 조선인의 설움을 그렸다. 일본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극 중간 중간 일제를 찬양하는 내용을 삽입했다지만 거기엔 분명 ‘나라 잃은 백성’의 애환과 분노가 꿈틀거린다.
‘빙화’를 연습하는 장면에서 “조선여자가 러시아놈한테 겁탈을 당하는데 조선남자가 퉁소나 불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라는 배우들의 힐난에 임선규는 이렇게 답한다.
“그게 조선의 현실 아니오? 딴전을 피우며 퉁소나 부는 게 조선 남자들의 입장 아니오? 이제 정직해집시다.”
촌스럽고 부끄럽다고 우리 연극사의 치부로 간주하는 시대를, 이렇게 애정을 갖고 응시하는 힘이야말로 이 연극의 최대 미덕이다. 이 연극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오늘날 친일파로 낙인이 찍힌 이들이다. 그런 그들을 연극무대로 호명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금기의 타파다.
거기엔 모든 연극인에 대한 동병상련이 작동하고 있다. 이는 임선규를 따라 월북하는 혜숙의 오빠 전민(이동준)이 남긴 마지막 대사, “연극인에게는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없어”에 담긴 희구이기도 하다. 신파극, 악극, 만담극, 창극, 신극까지 다양한 연극 장르를 넘나드는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i: 1만5000∼3만 원.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76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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