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소설가 송우혜 씨(63·사진)는 ‘순종실록부록’에 실린 1911년 7월의 기록을 읽다가 한 대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이은(李垠)에 관한 얘기였다. 일본에 끌려간 이은이 최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는 내용이었다. 송 씨는 “소년 이은이 일본 학생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을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송 씨는 이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2003년 이화여대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송 씨는 ‘이은의 정략결혼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 박사과정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이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이은 연구는 대한제국 황실 전체에 대한 연구로 확대됐다. 송 씨는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등 사료와 당시 주한 외국인들의 자서전, 신문기사 등을 뒤졌다. 이를 토대로 송 씨는 최근 역사서 ‘마지막 황태자 1∼3’(푸른역사)을 냈다. 송 씨는 “잘못 알려진 내용들을 바로잡고, 기존에 알려진 내용의 배경을 명확히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1권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에선 이은의 생모인 엄귀비를 다뤘다. 민비를 모시던 상궁에서 ‘황귀비 엄씨(엄귀비)’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다. 송 씨에 따르면 엄귀비는 타고난 배포와 지략으로 고종을 보위하면서 궁궐 안팎의 일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종을 자신의 가마에 태워 몰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시킨 ‘아관파천’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송 씨는 한 가지 궁금증을 가졌다. 고종의 곁에서 권세를 누리던 엄상궁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아관파천을 주도했느냐는 것이다. 송 씨는 “이 의문 뒤에는 우리 역사가 챙기지 않은 정화당 김씨라는 여인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민비 시해 이후 새 왕후로 간택됐던 여인이다. 새 왕후 간택은 시해사건을 묻어버리기 위해 일제가 서둘러 추진했던 일이다. 송 씨는 “새 중전이 들어오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우려했던 엄상궁은 친일파 세력을 일시에 괴멸하면 새 왕후 가례가 없던 일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석했다. 그 이유로 아관파천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2권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 3권 ‘왕세자 혼혈결혼의 비밀’에선 일본에 끌려간 이은의 생활을 ‘인질’과 ‘혼혈결혼’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했다. 송 씨는 “이은이 나이가 더 많은 일본 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하자 일제는 이은을 열등생으로 만들기 위해 육군중앙유년학교 예과에 편입시켰다. 이은은 군사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체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열등생이 됐다”고 설명했다.
송 씨는 고종 독살설에 대한 실체도 정확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상황을 볼 때 일제가 고종을 독살할 이유는 없다는 게 송 씨의 생각이다. 송 씨는 일제가 추진한 이은의 결혼을 근거로 들었다.
이은과 일본 왕족 출신 이방자의 결혼식은 1919년 1월 25일로 정해졌다. 같은 해 1월 18일 개막하는 파리강화회의를 겨냥한 것이었다. 일제는 두 사람을 신혼여행차 파리에 보내 세계 열강에 그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송 씨는 “일본과 조선이 평화롭고 자발적으로 한 나라가 된 것이라고 과시하는 데 이은의 결혼을 이용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일제가 그런 계획을 세운 마당에 고종을 독살함으로써 결혼식을 망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세상을 떴다.
송 씨는 소설가로서의 문장력과 역사전공자로서의 지식을 적절히 결합해 글을 써내려갔다. 송 씨는 “객관적 팩트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에 소설적 구성을 가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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