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무엇인가. 고전적인 질문이지만 현대인에게는 낯설게 다가올지 모른다.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영혼에 대한 표현이 가끔 등장하지만 일상에서는 거의 마주칠 일이 드문 단어이자 비교적 낡은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이성주의 철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대두된 이후 영혼 개념보다는 ‘정신’ ‘의식’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게 됐다.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현대인이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무수한 욕망의 기호로 가득한 이미지의 세상에서 현대인들이 이성의 역량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데다 감정 조절과 통제에 익숙지 않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 저자는 현대인들의 문제를 서양 고대인들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 그 핵심은 영혼이었다.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영혼의 개념이 정립된 시점부터 출발한다.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지은 호메로스의 시대에 영혼은 주로 생명의 원리로 여겨졌다. 이는 죽음을 맞는 순간 신체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우리가 말하는 불멸의 영혼 개념과는 다른 그림자나 환영의 존재로만 인식됐다. 영혼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 후기로 오면서 ‘나’ 또는 ‘자아’의 의미를 확보하면서 욕망의 원천으로도 사용되며 포괄적 의미를 갖게 됐다.
영혼의 개념이 확립되면서 고대인들은 영혼의 불멸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자연히 인간의 신체가 죽음으로 소멸해도 영혼은 다른 신체에 들어가 윤회하게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윤회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고통을 반복해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두려움은 영혼의 윤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윤리적 반성, 책임이 강조되고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플라톤도 영혼의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영원불멸한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개념과 철학적 사유의 생성 과정을 세밀하게 그렸다.
저자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탈주해 신들의 세계로 돌아가고픈 갈망이 지식과 철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쾌락만 추구하다 ‘망각’하게 되면 윤회를 멈출 수 없지만 ‘기억과 상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에 대한 고대인의 인식이 사상과 종교 발전에 발화점이 된 셈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상의 ‘삶’에서도 윤리와 이성을 추구했다. 영혼을 돌보려면 타자와의 관계, 이성에 의한 욕구 통제 등이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논의된 그리스 철학들을 살펴봤다.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철학가는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대화하는 동시에 타자의 영혼과 소통했다. 학문적 엄밀성과 정확성으로 스스로 결박하지 않고 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며 신화와 비유를 많이 사용한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저자는 플라톤 외에도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자,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등의 사상, 그리스 신화의 기원 등을 되짚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영혼은 생명력은 물론 감각 감정 상상력 사유 추리 판단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저자는 “고대인들의 영혼 개념을 통해 인류가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 지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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