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요 네스보의 ‘눈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4일 03시 00분


범인찾기 넘어 범죄동기 추적, 북유럽 스릴러의 냉혹한 마력

보수적인 영국의 출판시장에서 해외 작가의 책을 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면 잘 팔리는 책은 대개 영미권 작가의 책임을 알 수 있다. 북유럽 작가라면 그나마 헤닝 만셸이 체면만 살려 주고 있던 상황에 2008년 스티에그 라르손이라는 작가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 번도 책을 내본 적 없는 신인이 스웨덴의 세 번째로 큰 출판사에 우편으로 보낸 원고들. 3부작인 이 소설에 끌린 편집자는 곧바로 작가에게 연락했으나 작가는 이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졸지에 첫 작품이자 유작이 돼 버린 ‘밀레니엄 3부작’은 출간되자마자 스웨덴에서만 300만 부가 팔리며 기염을 토했다.

스웨덴에서 잘 팔렸다고 해서 영국에서도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지만 이 3부작은 2008년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모든 베스트셀러 차트를 석권하며 북유럽 소설 붐을 일으켰다. 뒤늦게 북유럽 소설의 매력에 눈을 뜬 영국 출판사들은 ‘포스트 스티그 라르손’을 찾기 시작했고 최근 2년 새 많은 북유럽 작품이 영국에 소개됐다.

그중 단연 으뜸은 노르웨이의 요 네스보다. 그는 1997년 ‘배트맨(The Bat Man)’으로 데뷔한 이래 14권의 작품을 썼고 40개 언어로 작품이 번역된 스릴러 작가다. 특히 2007년 발표한 소설 ‘눈사람(The Snowman·사진)’은 노르웨이비평가협회 소설상에 뽑히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올해 8월 영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북유럽 소설 붐을 타고 몇 달째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눈사람’은 ‘밀레니엄 3부작’과 비슷하게 사회적 문제에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불륜이다. 소설은 ‘노르웨이에서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의 비율은 전체 아이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라는 충격적 발언으로 시작한다. 충실한 아버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던 아이는 어른이 된 뒤 우연히 목격한 어떤 여자의 불륜을 통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그는 곧 살인자(혹은 정의의 사도?)로 변신해 이런 여성을 살해한다. 그리고 한 형사가 그를 뒤쫓는다.

뻔한 얘기 같지만 ‘눈사람’은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작품은 이러한 살인과 눈사람의 연관성이 무엇이며 눈사람은 무엇을 상징하는가라는 질문을 줄곧 독자에게 던진다. 예상외로 범인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기타 영미권의 스릴러와 다른 점은 범인을 짐작했다고 해서 스릴러의 속도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없도록 하는 영미권 스릴러에 비해 ‘눈사람’은 중반부에 이미 범인을 짐작하도록 만들지만 진정한 추리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어떤 이유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됐으며 그 범죄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결말로 마무리되는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특유의 냉기가 느껴진다.

‘눈사람’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다시금 판매 순위가 오르고 있다. 영국인들은 영국보다 더 추운 북유럽의 쌀쌀한 냉기를 느껴보고 싶은 모양이다. 올겨울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골목에 서 있는 눈사람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할 것이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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